[레지던시展 ⑪ OCI미술관] 끝없이 다양한 젊은 작가들 개성을 끝까지 보여주기

다아트 김연수 기자 2017.01.06 17:32:18

송윤주, '역경 - 화택규(어긋나다)'. 먹, 안료, 한지에 스크래치, 53.5 × 45㎝. 2016.


종로구 OCI 미술관은 작년 한 해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보고전 ‘Cre8tive Report(크리에잇티브 리포트)’를 1월 6일~2월 18일 개최한다. 젊은 작가들을 위한 미술관들의 창작 지원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그와 함께 진행되는 오픈 스튜디오, 작가와 큐레이터-이론가들과의 매칭 프로그램 그리고 때에 따라 해외 교류 프로그램 등으로 이뤄진다. OCI미술관은 이에 더해, 지방 순회전과 멘토링 프로그램 격인 ‘비지팅 아티스트’ 프로그램 등의 행사를 가진다. 작년에는 공성훈 성균관대 회화과 교수가 방문해 작가들과 많은 공감을 나눴다고 전한다.


미술관들이 비슷한 프로그램 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각의 개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모이는 작가군이 보이는 성향에 따른 것일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영기 큐레이터에게 지원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 가장 먼저 물어본 이유는 현재 젊은 작가들의 작업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솔직하게 말하면, 유행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작업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김영기 큐레이터의 대답은 단순한 것이었다. 가능하면 골고루, 장르와 주제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선정한다는 것. 물론 ‘다양한 장르와 주제’라는 선정 기준은 이미 비주류의 작업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돼 있는 것이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OCI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은 각기 다른 작품들을 관통하는 미묘하게 공통된 정서가 있다고 느껴진다.


매년 8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보고전인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어느 것 하나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없고, 서로 부딪히는 작품이 없다는 것이다. 큐레이터는 전시장 입구의 서문에서 전시 제목인 ‘Cre8tive Report’의 8의 의미에 대해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굳이 붙이자면 팔보채가 아닐까’라는 농담을 던졌다. 8명의 각기 다른 특성들이 모여 하나의 맛있는 전시를 만들어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채로운 생각과 흥미로운 발상들을 보며,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로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본 지가 오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큐레이터는 "다른 어느 기수보다 분위기와 사이가 좋았다"고 전한다. 작가 지원 자체보다 교류를 통한 상승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1년 동안 인천의 학익동에 있는 레지던시에 머물며 일궈낸 그들의 결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1층


총 3개 층으로 나뉜 미술관의 1층 전시장엔 작가 송윤주, 박상희, 최수진의 회화 및 영상 설치 작업이 선보이고 있다. 송윤주 작가는 주역의 64괘(卦) 또는 한자를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 동양철학에 기반을 둔 작품이라는 유추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으면서도, 그 결과물은 그래픽 디자인으로 보이는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이다. 푸른색 화면을 빽빽하게 채운 풀처럼 보이는 기호들은 한자 ‘초두머리(艸)’다. 작품의 제목은 ‘혁초’. ‘민초들이 혁명을 이룬다’는 뜻이다. 그 옆의 작품은 자연 형상을 가리키는 기호인 괘에 작가가 원 모양을 덧붙여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괘가 의미하는 것을 알고 기호를 읽어내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기호를 읽어내는 것이 그렇듯이 이미지만으로도 추리하듯 이야깃거리가 탄생하기엔 충분해 보인다.


박상희, ' 홍콩 소호 밤'. 캔버스에 아크릴, 비닐 시트 커팅, 112 × 145.5㎝. 2016. (부분)


박상희 작가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디지털 풍경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시트지의 매끈한 면 위에 물감을 올린 원근법이 잘 반영된 그림이다. 그 위에 유기적인 선들이 컷팅돼 있다. 어느 순간의 풍경은 잘 그려진 그림으로 표현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순간의 감성은 원근법을 생각하며 퇴색된다. 감성은 오히려 자유로운 드로잉 선과 재료의 질감이 더 직접적으로 전달해주곤 한다. 그가 표현하는 풍경화뿐만 아니라 필체 등 개인 특성이 반영된 결과물과 소리, 영상 등의 조합은 다양한 매체와 표현 방식이 결합돼왔던 기존의 방식을 벗어난다. 그의 작품은 감성과 이성, 개인과 우리, 시간, 공간 등의 표현을 한 작품 안에 펼쳐놓으며 그것을 완벽하게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는 듯하다.


최수진, '색더미'. 캔버스에 오일, 193.3 × 130.3㎝. 2016.


그야말로 ‘그림을 그렸다’는 말이 어울리는 최수진 작품의 내용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려면 색이 필요하고 그림 속 주인공은 색을 찾는다. 차곡차곡 쌓인 색 덩어리들 속에서 마음에 드는 색 덩어리를 골라내고, 꽃잎과 열매에서 짜낸 색을 숙성시켜 잘 빚기도 하고, 수평선을 가지기 위해 수평선을 베틀에서 짜낸다. 색을 접하며 창작자, 특히 그림 그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들, 색이 물질로 느껴지고 그래서 엉뚱한 동사가 붙을 수도 있는 생각들이 화면 안에 화려하면서도, 씩씩하고 소박하게 펼쳐졌다. 이 모든 상상력은 그저 언어로 옮기기만 해도 예쁜 동시가 될 것 같은 모습이다.


정아롱, '숲길 속 산책'. 에폭시 몰딩 컴파우드 위에 계란 템페라, 14 × 15㎝. 2016.


2층

2층의 전시장은 정아롱의 회화작품으로 시작한다. 정아롱의 작품은 숲 속 풍경이다. 그 숲엔 유니콘과 사유하는 것 같은 여성의 모습이 있다. 이추영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가 쓴 정아롱의 작품에 관한 글에서 작가가 표현하는 숲은 “상상의 동물인 유니콘이 출몰하며, 요정이 등장하는 미지의 공간이자 회화의 아우라가 살아 숨쉬는 원초적인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즉물적 가치가 최고의 선이 돼버린 시대에서 신비와 미지의 영역이었던 회화의 신화를 새롭게 부활시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단순히 고전 회화를 참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템페라 등 수백 년 전 재료들을 직접 사용하면서 장인정신을 통해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찬 마술적인 회화의 세계를 창조하려 노력한다“고 전한다.


실버스타, '아홉개의 달이 뜨는 밤'. 캔버스에 오일, 각각 24 × 24㎝, 9개. 2016.


작가 고은별 혹은 ‘실버스타’는 전시장의 코너에 쇼케이스용 무대를 만들어 놨다. 이 무대는 그가 탄생시킨 캐릭터들을 선보이기 위한 곳이다. 작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파생된 캐릭터 12개를 만들었고, 실제 온라인에선 그들을 관리하는 에이전시 ‘실버스타 킹덤’을 운영하고 있다. 스스로를 대변하는 캐릭터이자 에이전시 운영자이기도 한 ‘실버스타’는 부끄럼이 많고 조울증이 심하다고 한다. 유약하고 자격지심이 많은 다중 인격의 ‘종이 사람’, 불운을 몰고 다니는 ‘먹구름’ 등 다양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들이 이룬 하나의 왕국은 사회를 형성하는 다양한 주위 사람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다양한 성격이 모여 있는 내 안의 왕국, 즉 나를 발견할 수 있게도 한다.


조현익, '믿음의 도리 - 탄생 Ⅱ'. 합판, 황동판 위에 스크래치, 혼합 매체, 300 × 180㎝. 2016.


조현익 작가는 믿음과 도리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주로 종교에서 강요되는 것 같은 이 믿음과 도리라는 항목은 전단지에 인쇄되어 아파트 현관문에 붙여졌다가 분리수거함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식을 얻은 다음 그 믿음과 도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곧 믿음이요. 자식을 먹여 살리는 게 곧 도리라는 것을. 


그의 전시 공간엔 벽의 한 면을 가득 메운 아장아장 걷는 아들의 초상이 우상처럼 걸려있다. 아들의 존재는 종교처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끈이 되어 주는 것이다. 벽의 한쪽에는 아들이 세상의 언어를 한마디씩 알아갈 때마다 주는 기념패가 걸려있고, 그 앞에는 빈 유기 밥그릇이 놓인 돌아가는 상이 설치돼있다. 공중에 매달린 수저가 빈 밥그릇에 부딪힐 때마다 들리는 소리는 절이나 성당에서 들리는 종소리나 풍경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귀를 자극시켜 한 가장의 정신을 번쩍 나게 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박형진, '화합의 광장'. 한지에 잉크, 91 × 144㎝. 2016.


3층


전시는 3층에 설치된 박형진과 김치신의 작품으로 마무리 된다. 박형진은 세필로 표현한 커다란 한국화 작품을 선보였다. 그가 세필로 주로 표현한 것들은 여타의 전형적인 동양화 작품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풀과 나무 같은 자연이지만, 그가 그리는 자연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재단되어 이상한 몰골이 된 자연의 모습 이면에는 자본의 힘이 숨겨져 있다. 방치된 채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고 있는 경복궁 옆 옛날 미국 대사관저가 있던 땅을 그린 ‘주인 있는 땅’. 별 모양의 광장이 아파트 단지 간의 불화로 반토막 나버린, ‘화합의 단지’는 제목이 주는 모순된 감정으로 헛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김치신, '미술계 관행에 의한 자화상'. 10명의 작가로부터 받은 드로잉 위에 서명, 각각 40 × 32㎝, 10개, 2016.


김치신은 현재 사회 문제를 꽤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작가다. ‘변기공주’라는 별명을 얻어버린 박 대통령의 모습이 변기 뚜껑에 그려져 있고, 남녀 공용 화장실의 표지판 중 여성의 아이콘은 실체 없이 도려내져 있다. 주변 동료들에게 자신을 그리게 하고 자신은 서명만 한 ‘미술계 관행에 의한 자화상’은 작년 미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화가를 자처하는 모 가수를 패러디 한다. 온라인이나 촛불집회 광장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풍자 작품 같은 역할을 하면서도, 미술작품으로서 갤러리 안에 있을 때,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해지는 작품들이다.


우촨룬, 'Stone pile(돌탑)-1'. 사진 종이, 나무, 200 × 101 × 106㎝. 2016.


마지막으로, 이 여덟 명의 작가들과 함께 더불어 대만 작가 한 명이 작품을 선보인다. 대만 관도 미술관과의 교류 프로그램으로 초청됐던 대만 작가 우촨룬은 한국에서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기간 중 방문했던 강원도 인제의 백담사 근처에서 발견한 수많은 돌탑들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을 전시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모인 돌탑들에서 영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돌탑들을 3D로 스캔해 디지털 사진 이미지로 만든 입체 작업으로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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