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시국전시 ②] 장영혜중공업 “삼성은 '삼성=죽음' 작품이 고마울 것”

달콤살벌하게 읊는 시대 자화상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7.01.13 09:46:05

아트선재센터를 화제의 중심에 올려놓은 배너 작업. 장영혜중공업 전시장 입구에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본격 전시 공개에 앞서 기다리던 중 틀어져 있는 영상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인생을 망치는 길’이라며 여러 텍스트가 나오기 시작했다. ‘귓전으로 들어라’ ‘실수를 인정하지 마라’ ‘복잡하게 풀이하라’ ‘상식을 무시하라’ ‘미친 짓을 하라’ 등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예술가가 되는 길’이 이어진다. 웬걸, 앞에 나왔던 텍스트가 똑같이 나온다. 결국 ‘인생을 망치는 길=예술가가 되는 길’이라는 공식. 웃음이 팍 터졌는데, 딱 마지막에 ‘웃지 마라’는 글까지 나온다. 혼자 지레 찔렸다.


그런데 마냥 웃을 일이 아니다. 진짜로 예술가가 되는 길이 곧 인생을 망치는 길이라는 자괴감이 만연한 현실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이러려고 예술가가 됐나’고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이 비탄한 현실을 장영혜중공업이 풀어내는 방식이 눈길을 끈다. 그 방식이 특별해 아트선재센터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일단 전시장 외부부터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 -- 무엇을 감추나?’라는 글씨가 적힌 큰 배너가 건물을 감쌌다. 삼성이 빨간 글씨로 칠해졌고, 형형색색 화려한 게 꼭 대학가의 대자보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와 관련해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관장은 “이 배너가 붙고 아트선재센터가 반(反) 삼성 감정을 지녔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며 진땀을 흘렸다. 김 관장은 이어 “그래서 배너 작업은 전시에 포함하지 않으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도 했지만, 작가들은 전시에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장영혜중공업과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당연히 내용이 과격할 것이라는 것은 예측했기에 장영혜중공업이 마음껏 이야기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는

장영혜중공업은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룹이다. 간담회 때도 이들은 참석하지 않고 김 관장이 전시에 관해 설명했다. 왜 그런지는 친절하게도 아트선재센터를 통해 공개한 멘트에 드러난다.


“멋진 프레스를 존중하지만 우리 생각에 우리는 우리의 임무(예술을 창출하는 일)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들은 정치인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의 행위를 모순되게 하는 것도 우리의 임무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하는 코멘트를 믿으려 하나요? 우리의 작업은 프레스에게 도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름의 도전 의식으로 전시를 본 프레스의 입장을 적어보려 한다. 궁핍미술광장에서 만난 신유아 작가는 “과거 미술인이 민중미술이라는 기조 아래 그림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면, 시대가 흐를수록 틀에 구애받지 않고 점점 더 자유로워지는 중”이라고 말했는데, 장영혜중공업의 작업이 바로 그렇다. 이들이 주력해 온 작업은 웹아트다. 직접 연필을 잡고 글씨를 적는 게 위주였던 80년대와 비교해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타자 몇 번 치면 글이 금방 완성되고, 디지털 세상에서 글과 그림, 영상 등이 쉽게 공유된다. 노트북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이젠 핸드폰 하나로도 다 된다.


가족, 경제, 정치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비디오 자습서


장영혜중공업은 전시에서 가정, 경제, 정치를 주제로 웹아트를 펼친다. 한글과 외국어 텍스트가 웅장한 음악과 함께 공간을 채운다.(사진=김금영 기자)

장영혜중공업은 이런 시대의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직접 만든 음악이 깔리면서 화면에 텍스트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텍스트 자체가 예술이다. 그런데 단순 텍스트가 아니다. 이들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늘 텍스트에 드러내 왔다.


이들의 그룹명에서부터 사회를 대하는 나름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장영혜중공업은 장영혜와 마크로 구성된 2인조 그룹이다. 여기서 마크(Marc)를 중공업으로 변환시켰다. 장영혜 뒤에 중공업이 붙어 이들을 마크, 즉 상품화 시킨 모양새다. 꼭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처럼. 이에 대해 장영혜중공업은 “한국인은 대기업을 좋아한다. 그리고 마크는 대상화되거나 자본화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관장을 당황시켰다는 이번 전시를 살펴보면 더욱 비판적인 시선이 위트 있게 드러난다. 전시 명은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디오 자습서와 같이 이해하기 쉽게 소개해주겠다는 취지다. 작업은 가정, 경제, 정치 주제의 3개 파트로 구성돼 1~3층 각각을 채웠다. 한국어와 영어로 이뤄진 2 채널 비디오가 설치됐다.


많은 관심을 받은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작업이 설치된 2층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1층의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인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에 기반을 둔 작업이다(텍스트가 중심이 되는 작업이다. 이들은 평소 문학을 접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가족의 불화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은 어디일까? 서로 얼굴을 보고 자리에 앉은 밥상 자리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본래는 식사를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나누는 자리이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밥상을 뒤엎거나 물을 끼얹고, 이젠 음식으로 싸대기를 때리는 장면도 만연하니….


특히나 점차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시대에 가족은 따뜻한 존재가 아닌, 점차 어색한 대상이 되는 현실이다. 장영혜중공업은 이런 시점에서 가족 이야기를 끌어온다. 대화는 밥을 먹으면서 시작된다. 사업 구상 이야기가 나오고, 취업 이야기가 나오고, 그러다가 욕설이 오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내용이 점점 과격해진다. 그런데 분명 문장은 과격한데 미디어를 통해서 보거나, 아니면 일상에서도 있을 법한 대화들이라 웃음이 터진다. 또 강약 조절이 탁월하다. 그냥 글자만 계속해서 나오면 지루할 수 있는데 글자 크기, 글자가 바뀌는 속도, 음악의 리듬이 맞아떨어지면서 꼭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엔 작게 시작했다가 점차 미친 듯 언성을 높이는 목소리. 마지막엔 탄성을 부르는 결말까지 기다린다.


2층과 3층엔 전시가 열리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경제와 정치 주제의 텍스트가 전시됐다. 작품명부터 대단하다.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장영혜중공업이 삼성을 주제로 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삼성의 뜻은 쾌락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를 선보인 적이 있다. 이 작업을 장영혜중공업은 “아줌마가 삼성을 상상할 때만 오직 성적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무슨 뜻일까? 이번 작업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예술이 삶을 표현? 이젠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관장. 김 관장은

내용은 이렇다. 모든 삶을 삼성이 둘러싸고 있다. 삼성병원에서 태어나 삼성유치원을 가고, 삼성이 만든 옷을 입고, 삼성이 만든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는다. 그리고 삼성이 만든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삼성이 만든 폰을 사고, 삼성이 만든 그룹에 취업을 한다. 취업 기념으로 삼성이 만든 놀이공원에 가고, 삼성이 만든 자동차를 타고 출근을 한다. 삼성 안에서 배우자를 만나 삼성이 만든 결혼식장에서 결혼을 하고, 삼성이 만든 제품들로 집을 꾸리고, 삼성이 만든 건물에 들어가서 살고, 아이를 삼성병원에서 낳으면서 또 삶이 되풀이된다.


그런데 삶이 반전되는 모습도 함께 펼쳐진다. 삼성과 함께 할 때는 삶이 행복했지만, 이 과정이 자식에게 이어지지 않을 때 가정에 빈곤과 불화가 찾아든다. 점차 비싸지는 물가 등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자식은 삼성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삼성이 만든 대학교에 학비가 비싸 가지 못할 때 자식은 또래들 사이에서 비교당하고, 나중엔 부모의 목숨도 노린다. 그런데 이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삼성 보험에 잘 들어놓으면, 운이 좋으면 자식이 당신을 삼성 양로원에 보내줄 수도 있다고(이때 삼성이 만든 양로원이 아직 없다며 아쉽다고, 만들어볼 생각은 없냐고 권유하는 텍스트도 펼쳐진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났던 삼성병원에서 죽음을 맞고, 삼성이 만든 장례식장으로 가게 된다.


재벌그룹의 대표로 꼽히는 삼성은 ‘삼성=부(富)’라는 공식을 이 사회에 만들었다. 특히나 요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서 부정한 독을 축적하는 데 삼성이 큰 역할을 했다는 의혹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에 취업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많고, ‘삼성=부(富)’라는 공식도 어쩔 수 없이 여전하다. 그래서 더욱 이 작업이 파격적으로 느껴진다. 이와 관련해 장영혜중공업의 대답은 위트 있다.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삼성이 이 사회에 제공하는 모든 것, 즉 모든 제품들이나 서비스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것들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을 떠올릴 때 아마 성적 즐거움이 아닐까 자주 생각할 것입니다. ‘삼성의 뜻은 쾌락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가 그 생각에서 이뤄진 작업입니다. 이번 작업은 아기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삼성이 손을 잡아준다고 소개합니다. 우리의 작업을 삼성은 무척 뿌듯하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텍스트 옆에 펼쳐지는 다소 기괴한 영상을 보면 과연 이 내용이 행복만 담은 것일지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꼭 사람의 내장을 클로즈업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즉 ‘삼성=행복=죽음’이라는 섬뜩한 공식이 느껴진다. 과연 삼성 대표가 작업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리 삼성을 이렇게 홍보하고 사랑해줘서 감사합니다”라며 감개무량해할까? 무척 궁금하다.


장영혜중공업,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 -- 무엇을 감추나'. 2016.(사진=아트선재센터)

3층의 작업도 눈길을 끈다.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 -- 무엇을 감추나?’는 흰 머리를 어색하게 염색한 정치인의 모습을 통해 진짜 모습을 감추려 하는 세태를 풍자한다. 선거 전에는 “정말 열심히 하겠다”며 환한 미소를 드러내던 그들이 막상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돌변하는지는 사람들은 몸소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금 흘러가는 이 시간에도 겪고 있다.


작업에는 그럼에도 치부는 가려지지 않는다며, 어색하게 염색한 검은 머릿속 흰 머리가 보인다고 지적한다. 2층의 작업이 위트 있게 비꼬는 식이었다면, 3층은 더 목소리가 강해진 느낌이다. “머리를 물들이는 정치인” “그건 부정직해” “설득력도 부족해” “그리고 우리를 설득하는 건 그들의 임무야” “그들은 그 직무 수행에 실패하고 있어” 등…. 이 작업을 청문회 시작하기 전 상영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들이 마음가짐을 다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뜨끔 한다거나.


2층과 3층의 작업을 보면 마치 최근의 탄핵 정국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 이 작업은 현재의 사단이 벌어지기 전 작업된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장영혜중공업의 발언은 앞으로의 예술과 삶이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준다.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을 2016년 3월 제의받고, 그 즈음 가능한 콘셉트를 생각했고 작품도 시작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와 대기업 비즈니스를 보면 예견한 것 같아 정말 기괴해요. 지금 사태를 보면 예술이 삶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훌륭한(?) 예술은 그런 방식으로 기능합니다.”


비탄한 현실에 한 방 맥이는 듯 통쾌한 전시는 아트선재센터에서 3월 12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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