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데스노트' 원작 본 관객들이 뮤지컬 보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

치밀한 원작 스토리를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7.01.13 18:12:53

뮤지컬 '데스노트'는 사신이 인간계에 떨어뜨린 데스노트로 인해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사신 렘과 류크를 연기하는 박혜나(왼쪽)와 강홍석.(사진=씨제스컬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처음 만화 ‘데스노트’를 봤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이름이 적히면 죽는 사신의 데스노트가 인간계에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일들. 노트를 주운 천재 소년 라이토가 자신의 잣대로 세상에 심판을 내리는 키라(KIRA)로 변하는 과정. 그리고 키라를 추적하는 또 다른 천재 탐정 엘(L). 그리고 데스노트가 어떤 이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바뀌는 상황.


콘셉트 자체도 파격적이었고 캐릭터도 하나같이 매력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뮤지컬화 된다는 소식, 그리고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는 소식에 정말 들떴다. 2015년 국내 초연은 전석 매진의 기록을 세웠고, 흥행에 힘입어 올해 재연에 나섰다. 기존에 L, 사신 류크와 렘을 각각 연기했던 김준수, 강홍석, 박혜나를 중심으로 한지상이 새로운 라이토, 그리고 라이토를 사랑하는 아이돌 가수 미사 역으로 벤이 새롭게 합류했다.


한지상은 데스노트를 주운 천재 소년 야가미 라이토를 연기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사진=씨제스컬쳐)

데스노트는 쇼케이스부터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귀에 꽂히는 킬링 넘버가 한 가득이었다. 본 공연 역시 이 기대감을 채웠다. 진짜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신이 돼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부르짖는 라이토의 ‘정의는 어디에’ ‘데스노트’부터 키라의 존재를 쫓는 L의 고뇌가 담긴 ‘게임의 시작’,  미사가 부르는 감미로운 멜로디의 ‘나의 히어로’ ‘비밀의 메시지’까지. 뮤지컬의 대표 넘버로 여러 개를 꼽아야 할 정도로 노래가 하나 같이 귀에 꽂혔다.


이 노래들을 받쳐주는 배우들의 역량도 눈길을 끌었다. 앞서 초연에서 역량을 드러낸 바 있는 김준수, 강홍석, 박혜나의 힘은 여전히 건재하다. 여기에 한지상과 벤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한지상은 초연 때 라이토를 연기한 홍광호보다 파워풀하진 않지만 보다 부드럽고, 벤은 기존 정선아가 연기했던 미사에 자신만의 상큼 발랄한 매력을 더했다. 배우들이 보여주는 하모니에 관객들은 환호성을 높인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 아쉬움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이것은 데스노트가 뮤지컬화 됐을 때부터 나왔던 이야기이긴 하다. 데스노트 원작의 매력은 치열한 두뇌싸움이다. 라이토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데스노트를 사용한다. 악인이라고 판단되는 사람, 자신의 정의에 거스르는 사람을 제거한다. 그리고 이를 들키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상대 L이 만만치 않다. L은 생각도 못한 허점을 치고 들어오며 용의선상에 라이토를 올리는 과정까지 따라잡게 된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긴박한 상황이 계속해서 연출되면서 작품을 읽는 내내 긴장감이 흐른다. 이것이 데스노트의 묘미.


천재 탐정 엘(L)을 연기하는 김준수. 기괴한 행동이 습관이지만 두뇌만은 탁월한 소유자다.(사진=씨제스컬쳐)

하지만 뮤지컬화 되면서 여러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원작의 장대한 내용과 분량을 약 3시간 동안의 공연에 녹여 내기 위해서는 압축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원작의 명장면(예컨대 라이토를 조사하던 레이 펜버가 키라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순간, 그리고 라이토의 썩소로 유명한 ‘이겼다’ 장면, L이 의자에서 쓰러지는 장면 등)으로 꼽히는 장면들이 몇 가지 도려내질 수밖에 없었고 결말도 바뀌었다. 매력적인 주요 소재는 여전하지만 전개 과정에서 치열한 두뇌싸움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쉽다.


캐릭터 해석도 원작과 약간 다르다. 라이토는 원작의 차가우면서도 잔인한 뇌섹남 측면보다 어리바리한 점이 부각되기도 한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해석이다. L의 추리 과정 또한 원작처럼 치밀하지 못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신 류크는 의외로 동료 사신인 렘에게 마치 인간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나마 가장 원작과 일관성이 있는 건 미사. 라이토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키라에 대한 맹신적인 신념은 무대 위에서도 여전하다.


키라의 맹신자이자 아이돌 가수인 미사를 연기하는 벤(가운데). (사진=씨제스컬쳐)

그래도 역시 무대 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이 있다. 배우들의 땀이 섞인 열연은 역시 원작에서는 느낄 수 없는 뮤지컬만의 강점이다. 그렇기에 아쉬움에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또 무대를 보며 열광적인 목소리를 동시에 높이게 된다. 원작과 비교할 때 아쉬운 결말 처리도 원작의 재해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나름 색다르다.


현 시국에 대한 풍자도 나름 볼거리다. 요즘 공연계에서는 현재 어지럽게 돌아가는 정권을 풍자하는 대사를 넣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데스노트도 슬쩍 지나가듯이 “이게 나라냐”며 국정농단 사태를 비판하는 대사를 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정의에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은 제거하겠다며, 자신이 바로 정의라고 말하는 라이토의 모습은,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가며 검열을 하려 했던 현재 우리의 실태와 다르지 않다. 초연 때와 비교해 데스노트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동의의 목소리를 높인다. 공연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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