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조형물 - ②] ‘괴물’과 ‘강남스타일’에 모자랐던 것은?

전문가 조언 받았다지만 누구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다아트 김연수 기자 2017.01.20 16:50:19

올림픽 대교의 야경. 성화 모양의 조형물이 보인다. (사진=위키피디아)


기념비 혹은 메시지 전달, 즉 계몽이나 홍보의 뚜렷한 기능을 가진 동상을 공공 조형물로 주로 접하던 시대를 지나, 우리가 거리에서 작품으로서 대형 조형물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정부는 올림픽이라는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나라를 치장해야 했고, 1972년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 안의 연면적 3000㎡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때 건축비의 1% 이상을 미술 장식에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건축물미술장식제도’를 바탕으로 1984년에는 서울시에 한해 조항을 의무화 했다. 1995년 이 조항은 대상 건축물 규모를 1만㎡로 완화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무화 하는 현재의 ‘건축물미술작품제도’에 이르렀다. 

건축비의 1% 이상을 미술 장식에 사용함에 있어 회화, 조각 등 미술의 어떤 분야도 상관없지만, 설치된 작품 중 조각의 비중이 거의 80%에 달한다고 한다. 건물의 내부에 설치되는 평면 작품과는 달리 주로 외부에 설치되는 조각은 필연적으로 공공성을 띄게 되는데, 사실 사전적 의미의 공공 조각이란 정부나 시 소유의 부지에 설치된 작품, 혹은 행정 기관의 주도 하에 설치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공공 조형물’과 혼용되어 쓰이긴 하지만) 민간 건축물에 설치되는 작품들은 주로 ‘환경 조형물’로 불리고 있다. 

이 법조항은 도시 환경 개선 및 시민들이 일상에서 미술품을 접할 수 있다는 점, 예술가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점 등의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건축주가 준공검사를 통과하려 작품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 졸속 처리를 한다거나, 리베이트, 관리 미비, 탈세, 브로커가 설치는 등의 각종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거리의 조형물들에 관련한 이런 만성적인 문제들과는 별개로 최근 몇 년간 대형 조각들에 관한 논란들이 줄을 이었는데, 특별히 이 작품들이 논란이 됐던 이유는 공공 기관들의 주도하에 기획-설치된, 그야말로 ‘공공 조각’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공공 기관 차원에서 제작이 이뤄진 조형물에 관한 논란들을 추려본다.

이슈1. 한강의 ‘괴물’ 

2015년 1월, 한강공원의 원효대교 인근에 등장한 괴물 형상의 조형물은 꾸준히 논란이 커져왔다. 한강사업본부가 주관해 제작-설치한 괴물 조형물은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시작한 스토리텔링을 통한 관광 상품 마련 사업들 중 하나였다. 2006년에 1천만이 넘는 흥행 성적을 기록한 영화 ‘괴물’ 속에 등장하는 한강에 사는 돌연변이 괴물을 재현해 실제 한강에 이야기로서 색을 입히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실감나게 재현했다”는 괴물의 형상이 정말 실감났던 것. 영화에서의 괴물은 최종 컴퓨터 그래픽이 완성되기까지 2년 6개월의 시간과 50억 원의 비용이 투자된 결과였다. 고 퀄리티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괴물의 형상은 빠른 속도의 등장과 함께 영화의 공포감을 극대화 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괴물의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은 극찬을 받기에 마땅한 것이었지만, 영화 속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측면이라는 것이다. 

꽃잎처럼 벌어진 괴물의 입 안에 앉으면 센서가 작동해 괴물의 효과음까지 더해지는 이 조형물에 대한 반응은 “막상 보면 징그러운 것이 사실”이라는 감상이 많아 보인다. 게다가 1억 8000만원의 세금이 들어갔다는 점, 영화의 개봉 시기 역시 10년이 다 돼 오래된 아이템을 다시 불러들였다는 등의 비판론이 일었다. 하지만, 영화를 볼 때도 징그러운 장면들이 등장하는 호러나 고어 장르의 장르를 즐겨보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문화 다양성의 측면에서 나쁘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들도 존재한다. 

한강공원의 '괴물' 조형물. (사진=한강사업본부)


이슈2.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의 ‘평화의 발’

2015년 12월엔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 설치된 ‘평화의 발’에 대한 논란이 시작됐다. 같은 해 8월 비무장지대 순찰에 나섰던 우리 장병들이 북한군이 매설해 놓은 목함 지뢰가 터져 하사 두 명 중 한 명은 우측 무릎 위, 좌측 무릎 아래가, 다른 하사 한 명은 우측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 하사들이 속해있던 육군 1사단과 효성그룹은 이들의 전우애와 군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약 2억 원을 들여 기념비를 기획-제작 했고, 같은 해 12월 발 형상의 '평화의 발'이 평화누리 공원에 선보였다. 당시 도발에 대응했던 우리 군의 155mm 포탄 1발의 뇌관을 녹인 재료로 만들었으며. 조형물 주변 바닥에는 실제 비무장지대에서 가져온 흙을 깔아 방문객이 비무장지대를 걷고 있다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었다.

당시의 보도 기사에 따르면, 이 조형물을 제작한 작가는 "북한의 지뢰도발로 잃어버린 영웅들의 다리이자 새롭게 부활한 발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통일이 되어 평화가 찾아온 비무장지대를 통과해 맨발로 걸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조형물에 대한 논란은 우선 잘린 발목 형상에 대한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병사들을 기림에도 병사들의 전신이 아니라, 발목 아래가 잘렸다고 해서 인체의 부분인 절단된 발의 형태로 표현한 것부터가 1차원적 사고의 결과라는 것, 그리고 그 직접적인 표현들은 곧 강요된 애국심으로 비춰진다는 것이 부정적인 반응들의 이유였다. 물론 그 다른 한편에선, 그 조형물을 볼 때마다 병사들의 희생이 떠오르며 애국심이 고취된다는 의견 또한 있다.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 설치된 ‘평화의 발’.(사진=국방홍보원)


3. 강남 COEX 앞의 ‘강남 스타일’

2016년 4월엔 강남 COEX 앞에 높이 5m, 폭 4m의 거대한 손 두 개가 겹쳐져 있는 모양의 조형물이 등장했다. 2012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 스타일’의 안무 중 말고삐를 잡은 것 같은 겹쳐진 손목을 형상화 한 것이었다. 제작-설치를 주관한 강남구청은 4억 원 가량이 투입된 이 조형물을 홍보하며 “세계적 인기를 끈 말춤을 형상화 한 동상은 강남의 상징이 되고,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들 것”이라고 밝혔다. 

조형물 아래 서면 센서가 작동해 싸이의 ‘강남 스타일’ 노래가 나오고, LED 조명 설치를 해 밤에는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이 조형물 역시 앞서 논란이 되었던 조형물들과 겹쳐 비판적인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괴물’ 조형물처럼 이미 시기가 지난 아이템인데다가, 한국의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마저도 한국의 ‘강남스타일’ 관련 마케팅에 싫증을 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평화의 발’의 형상이 절단면이 보이는 1차원적인 인체 재현이라 비판을 받았던 것처럼 이 조형물의 표현 방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비판만큼 이 조형물을 즐기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 관광 상품의 부재가 지적 받고 있던 상황에서 어찌됐든 색다른 볼거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의견도 들린다.

강남 COEX 앞에 설치된 '강남스타일' 조형물. (사진=강남구청)


행정상의 공공 조형물 

앞서 밝혔듯이 공공조각, 즉 행정 기관들이 주관하는 공공 조형물이 더 비판적인 논란의 주제가 되는 이유는 시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선 사례들의 비판 여론 중에는 (반복되기 때문에 생략됐지만) “내가 낸 세금이 맘에 들지 않는 작품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관광 상품의 개발, 기념 및 애국심의 고취 등 논란의 조형물이 세워지는 데는 갖가지 목적이 있지만, 결국 시민들이 주로 지적하는 부분은 그런 목적들이 표현된 외적인 결과물에 관한 것이다. 육군이 주도했지만 기획 및 제작은 민영 기업에서 이뤄진 ‘평화의 발’을 제외하고, ‘괴물’ 조형물과 ‘강남 스타일’의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나온 배경을 한강사업본부와 강남구청에 문의했을 때, 공통적인 대답은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다양한 문화 사업 중의 하나이며, 이 사업들의 전체적인 추진과정에서 전문가의 조언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문가 명단을 공개할 수 있냐는 질문엔 법률적인 이유로 공개를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전문가의 권위가 제대로 된 것이라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나올 법 하지만, 한편에서는 미술에 비전문가인 행정 주체가 만날 수 있는 전문가 역시 한계가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전 문화 행정가 모 씨는 행정 기구가 만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란 미술계의 극소수에 가까운 정해진 사람들이라는 것. 행정과 가까운 전문인들에 대한 자질 검증도 필요하긴 하지만, 결국은 미술에 종사하는 사람들 스스로의 공익적인 역할에 대한 인식도 필요해진 상황이라는 점을 짚기도 했다. 

작가와 전문가의 역할 

국민대학교 입체미술과 김태곤 교수는 이런 논란에 앞서 조형물을 인식하는 시선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공 조형물은 공공 디자인과 공공 작품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조형물을 작품의뢰를 한 주체의 취향 혹은 목적성에 중심을 두는지 아니면 작가 개인의 의도와 아이디어에 의한 것인지로 구분지어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조형물들은 디자인과 작품의 개념이 혼재돼 있다는 것.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작품들의 경우는 공공 디자인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자면 현재의 공공 조형물들은 작가 개인 역할이 작품 안에서 약화돼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공공 조형물의 기획에 있어 전문가 집단의 권위가 작품의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만큼 작가 개인의 표현이 작품 안에서 강해진다면, 그 이름만큼의 질의 보장이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는 지점이다. 

또 다른 논란의 핵심은 미. 추에 대한 관점의 차이다. 이것은 전문가 집단과 공공 작품에 관련한 시민의 권리와 연관돼 있다. 많이 알려져 있지만, ‘공공미술’에 대한 개념은 1967년 영국 미술행정가 존 월렛의 ‘도시 속의 미술(Art in City)’로부터 비롯된다. ‘선택된 소수’ 즉, 사회 계급 안에서의 상류층만이 미술을 즐긴다며,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접할 수 있는 공공미술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것. 미-추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미에 대한 기준만큼 다양하다. “내 세금이 이 작품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의견은 달리 말하면, ‘아름다운 것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거리에서 느닷없이 마주치는 조형물이 폭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번 연재에서 다뤘던 박정희 흉상을 훼손한 작가 최황 역시 자신의 공공 조형물에 대한 관심은 “행정 시스템과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의 간극에서 비롯됐다”고 밝히며, 2001년 올림픽 대교에 성화 모양 조형물을 설치하려다 헬기가 추락해 군인 3명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당시 서울시의회 회의록을 보면, 행정에서 바라보는 조형물과 작가가 생각하는 조형물의 간극에서 비롯된 그것을 다루는 물리적인 방식 그 어느 것도 맞는 것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정 감사 자료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날 헬기로 조형물 설치가 무리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설치가 강행됐고, 그 사건에 연루된 관계자들은 모두 발뺌해 아무런 후속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심지어 군사 작전에도 포함 시키지 않아 남은 유족들이 살던 군 아파트에서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는 것이다. 

보지 않을 권리

정리하자면, 행정 기관의 조형물의 기획, 제작, 선정에 있어 전문가 자문단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며, 관습화 된 시스템에 기대 알음알음 처리돼서는 안되는 것이고, 작가들 역시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인지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시민들은 조형물마다 다른 탄생 배경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적 기준을 가질 때, ‘미술을 향유할 권리’와 더불어 ‘보지 않을 권리’ 또한 주장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1월 8일 서울시는 공공과 민간으로 나뉘어 있던 서울 시내 조형물 관리 규정을 통합하는 ‘공공미술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공공미술 활성화 및 작품수준 향상을 목적으로 심의 및 자문 기관들이 각각 달랐던 공공 조형물과 민간 신축 건물의 환경 조형물에 일관된 규정을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동상, 기념비, 기념탑 등의 상징 조형물에 대해서만 공공미술로서 관리했지만, 이번 조례는 기존 공공미술의 범위를 회화나 조각, 공예, 사진, 서예 등 미술작품으로 확대한다. 또한 여러 부서로 흩어져 있던 자문 기구 통합을 위해 '공공미술위원회'를 신설한다. 

공공미술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7명 이상 10명 이내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공무원이 아닌 위원 중에서 서울시장이 위촉한다. 위원들은 미술, 건축, 디자인, 도시계획 관련 공무원과 전문가들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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