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선 도시건축 ② ‘연남 566-55 앤솔로지’전] 변화 속에서 보지 못하는 것들

다아트 김연수 기자 2017.03.17 16:54:16

노충현, ‘룸(Room)’. 캔버스에 오일, 112 x 162cm. 200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의 지명은 1970년대 중반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연희동의 남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번성한 인근의 홍대 일대의 베드타운 기능을 하던 이 동네는 홍대 앞의 지대 상승으로부터 예술가들이 피신하면서 공기가 변하기 시작했고, 옛 경의선 기찻길의 잘 꾸며진 산책로로의 변신은 주거 지역 사이사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콘셉트의 상업 공간 유입을 촉발했다. 

이번 미술시선 도시건축 시리즈에서 소개할 전시 ‘연남 566-55 엔솔로지’가 열리고 있는 공간 챕터투(Chapter II)는 이런 변화를 겪고 있는 연남동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수년 전까지 동네의 슈퍼마켓과 창고로 쓰였던 곳이다. 공간이 들어선 건물은 후원사인 의약 부품 관련 업체 유토피아의 사옥이다. 처음에는 미술관 설립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지역의 특성과 조금 더 효용성 있는 공간의 운영을 고려해 예술가를 후원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운영과 함께 조금 더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안공간 형식의 전시장으로 꾸몄다.

기획팀은 “이번 기획전은 챕터투의 설립과 함께 이 공간이 위치한 장소의 연원을 알아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됐다”고 전한다. 오랜 기간 사옥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극심한 변화를 앓고 있는 이 장소에 대한 탐구는 공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연구 과정으로도 비춰진다. 이들은 더불어 “단순한 특정 장소의 이력을 살피는 데에서 나아가 대도시의 팽창과 쇠락, 젠트트리피케이션 현상 등 대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도시 재편 현상과 그것이 반영된 사적인 삶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챕터투가 소개하는 노충현, 이지양, 김지은, 권태경, 린다 하벤슈타인 등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을 통해, 대도시의 변화를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선들을 살펴본다. 

챕터투 전면에 설치된 권태경 작가의 '선언'.(사진=챕터투 제공)


사고를 확장하는 숨겨진 통로

모퉁이에 있는 건물의 전면 유리창을 통해 권태경 작가의 작품 ‘선언’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 단색화를 떠올리게 하는 반복되는 물감의 질감이 부각된 평면회화에서 검정색 호스들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와 있다. 이 호스들은 바닥에 늘어뜨려지기도 하고, 따로 떨어져 있는 캔버스 두 개에 연결돼 있기도 하다. 전시장 내부에 있는 그의 또 다른 작품은 캔버스를 관통한 주름관이 캔버스의 색과 같은 흰 색으로 채색돼 있다. 

그의 작품에서 캔버스는 견고한 개념으로 쌓아올려진 모더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평면 회화의 상징이다. 이런 캔버스를 관통하거나 돌출된 관들은 일차적으로 관습화된 경계, 즉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와해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한편, 튜브나 파이프, 호스 등은 흐름이 이뤄지는 통로다. 드러나는 건축의 안쪽에 자리 잡고 건물과 건물 등 도시 곳곳을 연결시키거나 외부와 내부의 공기를 순환하게 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재료로서 꽤 빈번하게 현대미술의 소재로 등장한다. 이런 이해와 함께 하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지던 작품이 공간에 관한 관습적인 사고를 확장하고자 하는 단순 명료하고 도발적인 시도로 보인다. 

이지양, ‘트위들덤 트위들디 앤 더 빈티지 로프(Tweedledum Tweedledee and the Vantage Loaf)’.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16.44 x 155.67cm. 2015.


변화 속 희생

이지양 작가는 쥐 여러 마리가 방역 목적의 끈끈이에 걸려 죽어있는 모습을 포착했다. 쥐의 사체는 도시의 음습한 창고 같은 공간에서 자주 목격된다. 작가가 실제 작업실에서 목격한 장면이라고 한다. 도시의 어두운 곳을 골라 다니던 생명체의 죽음은 밝은 색감으로 드러나며, 전혀 비참하지 않고 오히려 곱게 잠든 아기 생쥐처럼 귀엽게까지 보인다. 하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이런 감상이 떠오르는 것이 더 소름 돋는 현실일지 모른다. 

기획팀은 “두 개의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힘의 역학 관계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두 개의 세계란 인간과 쥐의 세계지만, 효용성에 따라 다른 세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없앨 수 있는 강자와 희생되는 약자일 수도 있다. 효용성의 논리에 따른 변화, 그리고 그 변화의 순간에 발생한 충돌이 낳은 희생에 대해둔감해진 도덕성을 잠시나마 불러일으킨다.  

린다하벤슈타인, ‘레벨링(Leveling)’. 싱글 채널 비디오, 20분 37초. 2015.


거품에 뒤덮인 정체성

이 전시 공간이 있는 연남동도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젊은 세대들은 조금 더 색다른 볼거리와 분위기를 찾아 도시의 곳곳을 찾아 헤맨다. 조금 유행이 탄다 싶으면 다른 방문객들이 몰려들기에 또 다른 장소를 찾아 나선다. 흥미로운 점은 창고를 개조한 카페, 빈티지 제품들을 파는 상점 등 오래된 것들에서 풍기는 정취가 그 유행의 정점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풍경들이 정말 자연스러운 변화의 결과일까. 변신한 예전의 그 주택가가 대부분 유럽의 어느 거리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유럽 같다’고 짐작만 할 뿐 어느 나라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정체모를 풍경들이 연출되고 있다. 

린다 하벤슈타인의 영상은 하얀 크림을 얼굴 위에 반복적으로 펴 바르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펴 발라진 하얀 크림은 겹겹이 쌓이며 얼굴의 윤곽과 표정을 가리고, 머리는 그저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설명에 따르면 하얀 크림은 거품을 낸 화장품의 일종이라고 한다. 자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외부의 시선을 우선한 행동이 반복됨으로서 나타나는 결과를 보여주는 듯하다. 기획팀은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던 도심 곳곳이 자본의 논리로 획일화된 거대한 쇼룸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런 도시의 변화 방식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전했다. 

김지은, ‘플러밍 퍼스트(Plumbing First)’. 캔버스에 오일, 몰딩, 폼보드, 돌무더기, 망치, 가변 설치. 2014~2017.


가려진 도시의 이면 드러내기

전시장 내부의 모퉁이에는 김지은 작가의 회화-설치 작업 ‘Plumbing First(플럼빙 퍼스트)’가 있다. 벽(설치한)을 뚫어 구멍을 내고, 구멍 안으로 배관 등이 노출된 벽 안의 모습을 회화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경험하며 다양한 도시의 문화를 경험했다. 이제 막 건설된 신도시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마저 끝나고 썰렁해진 도시 등지에서 작업하며 그는 공간 변화의 이정표로서 배관 공사를 목격한듯하다.

빈번하게 신축되고 철거되는 현대 건축물의 공사 현장 등을 바라보며, 작가는 줄곧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는 삶의 터전으로서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는 공간의 가치는 무시된 채 자본의 효용성에 의해 대량 생산품처럼 소비-폐기되는 건축물들의 모습을 담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뚫린 벽처럼, 인지하지 못했던 도시 건축의 숨겨졌던 면을 원근법적으로 뒤에 배치하고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막(건축현장의 가림막이나 담장 같은)을 물성이 돋보이도록 전면에 제시하는 것은 작가 고유의 표현 방식이다. 찢겨져 나간 벽 사이로 드러난 배관 구조는 마치 피부에 상처를 입고 내장이 드러난 생명체의 모습 같기도 하다. 전시장에 설치된 건물의 잔해들은 작가가 뉴욕에서 거주하던 시절 배관 공사 중 생긴 것을 옮겨와 설치한 것이다.

노충현, ‘연희로 11길 61’. 캔버스에 오일, 53 x 65cm. 2017.


주인이 없는 빈 공간의 의미는?

노충현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풍경을 관찰해 그려왔다. 하지만 그 풍경은 그것을 배경으로 있어야 할 주체는 사라지고, 무엇인가 있었을 것이라 추측되는 흔적일 뿐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전형적인 상가 건물의 내부를 묘사한 ‘Room(룸)’과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 ‘연희로 11길 61’을 선보인다. 

작가의 작업은 그가 주로 다루는 공간에 대해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으로 남긴 기록적인 성격처럼 볼 수도 있지만, 그 공간이 가지는 이야기에 따라 작품이 전달하는 감성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예전 기무사가 있었던 건물의 내부를 그린 작품이 빈 공간이 밀실, 폐쇄, 공포 등의 폭력적 감성으로 전달 된다면, 농촌의 풍경을 그린 작품은 외부를 그렸음에도 인물의 부재로 인해 오히려 고립되고 쓸쓸하게 보이는 것 같다. 

이와 함께, 그가 표현한 빈 공간의 의미 역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기무사를 그린 화면 속에서 멈춰버린 시간이 정치적인 의미에서 한 시대의 종말과 시작을 동시에 내포하는 한편, 상가였던 건물의 빈 공간은 사회 변화를 배경으로, 해석을 조금씩 달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변화를 겪고 있는 연남동의 시간이 묶인 작품 ‘연희로 11길 61’에선 어떤 객관화된 감성을 느낄 수 있을까. 

한편, 연남동 566-55번지에서 선보이는 작가들의 시선은 사실 챕터투라는 공간의 장소 특정성에 따라 한 곳에 모아 놨다 뿐이지 더 넓고 다양하게 감상-해석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변화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이들의 작품은 변화 자체에 대한 뚜렷한 비판이나 긍정의 입장을 드러내진 않는다. 다만 바라보고 사고하는 방법에 대한 고찰과 함께, 변화의 과정에서 어떤 것들을 간과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전시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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