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작가 - 손경진] 마음 모으면 마을이 로봇처럼 지켜주지요?

갤러리오 ‘빛 안의 마을’전 속 숨은 그림 찾기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7.05.25 13:22:16

손경진, ‘협력하는 사람들의 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45.5 x 38cm. 2017.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언뜻 멀리서 그림을 보니 만화 ‘로봇 태권브이’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로봇 모양의 형체가 화면 한가운데에 당당히 우뚝 선 채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서면 또 다른 모습이 발견된다. 그 로봇 모양의 형체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작은 집들. 그리고 이 집들 주위를 둘러보면 또 다른 풍경들이 보인다. 하늘엔 아름다운 해가 떠 있고 새들이 날아다니며, 아래엔 싱그러운 나무들, 그리고 나무 주변에 행복한 모습의 사람들이 있다.


그림은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다르다고들 하지만 손경진 작가의 그림은 특히 그렇다. 그냥 지나치면 놓쳐버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 그림 곳곳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어 있다. 예컨대 멀리서 봤을 땐 그냥 점인 줄 알았던 풍경의 정체가 가까이에서 보면 산책하는 사람, 또는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으로 드러나는 등 또 새로운 그림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작가는 갤러리오에서의 개인전 ‘빛 안의 마을’에서 이 매력을 한껏 품은 그림들을 선보인다.


손경진, ‘기뻐하는 사람들의 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과슈, 22.7 x 15.8cm. 2017.

전시명 ‘빛 안의 마을’은 그의 작업을 설명해주기에 충분하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빛’ 그리고 ‘마을’. 먼저 빛 이야기다. 작가의 그림 대부분에는 태양이 들어가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로 새파란 하늘과 태양빛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어려운 세상. 그래서 작가의 그림은 더욱 청량감 있으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저는 비오는 날보다 햇빛이 가득한 날을 더 좋아해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특히 햇빛이 인상 깊었던 날이 있어요. 저는 평소 동네를 산책하다가 작은 동산에 올라가서 빛이 잘 드는 공간에 있곤 했어요. 하루는 햇빛 아래에서 눈을 감고 명상을 했죠. 그런데 그 색감 있잖아요? 햇빛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을 때 바로 보이는 색감.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그 햇빛의 잔상이 정말 좋았어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죠. 그 따사로운 빛의 느낌을 그림에도 담고 싶었어요.”


손경진, ‘가을 빛의 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과슈, 25 x 25 cm. 2017.

작가에게 빛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는 존재였다. 그래서 화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빛을 담았다. 빛은 봄에는 화사하고, 여름엔 강렬하며, 가을엔 생명력이 넘치고, 겨울엔 푸근한 느낌이 있었다. 작가의 화면에는 빛의 이 오묘한 신비로움과 긍정의 에너지가 오롯이 담겼다.


그리고 이 빛 아래 마을이 있다. 요즘은 마을이라는 개념이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주 먼 과거에는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 등으로 서로 돕고 살았고, 기쁜 일이 있으면 마을 잔치를 열어 함께 어우르는 자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엔 개인주의, 더 나아가 이기주의가 만연하다.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길거리도 걷기 무서운 가운데 ‘이웃사람’도 옛말이다. 이웃사람은커녕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점점 늘어나는 고독사에서 이젠 무연사(無緣死: 고독사 중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없는 상태)까지 벌어지는 쓸쓸한 현실. 작가는 그래서 더 사람 사는 마을을 그리고 싶었다고.


마을을 지켜주는 파수꾼 로봇과
하늘 향해 만세 하는 사람과 나무들


손경진, ‘초봄 빛 안의 사람들’. 캔버스에 아크릴 과슈, 116.7 x 91cm. 2017.

“제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어울리고 있어요. 가족들은 각자의 집이나 마을 곳곳에서 거리낌 없이 다른 이들과 시간을 보내죠. 요즘엔 잘 볼 수 없는 풍경이에요. 저는 우리가 무심함 속 놓쳐버리는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에 관심이 없고, 하물며 가족끼리도 어색한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힘을 주는 건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예요. 개인주의 사회라고는 하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죠. ‘나’뿐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까지 함께 화면에서 보듬어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의 형태가 둥글둥글한 것도 이유가 있다. 서로를 경계하느라 날이 서 있는 게 아니라 협력하고 어울리면서 둥글둥글해진 것이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아니라 옛날 고개를 빤히 들면 바로 옆집 사람과 인사할 수 있었던 낮은 담벼락의 집도 눈길을 끈다. 어렸을 때 골목을 돌아다니며 뛰놀던 작가의 기억이 들어간 것이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들은 잘 보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환한 태양을 향해 ‘만세’ 하며 소리치는 듯한 나무들의 모습은 그 주변의 사람들과도 조화를 이루며 모두 함께 희망의 ‘만세’를 외치는 것 같다. 이렇게 작가는 그림 여기저기에 흥미로운 요소들을 배치해 놓았다.


손경진, ‘봄빛 안의 마을과 사람들’. 종이에 색펜, 26 x 18cm. 2017.

그렇다면 가장 먼저 눈에 띈 로봇 모양의 형체는 어떻게 완성됐을까? 여기에도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 작가는 어렸을 때 조립식 장난감을 갖고 노는 걸 좋아했다. 그 기억도 있었지만, 특히 그에게 각인된 로봇의 이미지가 있다. 어렸을 때 본 만화에서 로봇은 지구를 지키는 수호자이자 파수꾼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빛이 쏟아지는 이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마을을 지키는 존재로 로봇의 이미지를 끌어들여온 것. 하나의 로봇 모양의 형체를 띤 마을은 ‘빛의 마을’이자 ‘협력하는 마을’로 거듭난다.


화면 속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있지는 않다. 함께 모여 사진을 찍기도 하고, 나무를 구경하기도 하고, 따스한 햇살 아래 걸어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소한 순간 자체에 행복이 있다고 작가는 느꼈다고 한다.


손경진, ‘겨울 빛의 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과슈, 25 x 25cm. 2017.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고 해요. 어떤 사람은 돈이 많을 때 행복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명예에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죠. 그런데 전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 자체에 행복이 있다고 느꼈어요. 특히 작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을 꾸리면서 이 점을 더욱 느꼈어요. 지금 흘러가는 이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그냥 막연하게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끼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그림에라도 표현하고 싶었어요.”


작가는 또한 이 이야기를 자세히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의 그림을 “꼭 가까이에서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냥 흘러 보내면 잘 깨닫지 못하는 순간의 소중함처럼, 멀리서 그냥 지나치면 잘 알아차릴 수 없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그림에 담은 작가의 이야기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전시는 갤러리오에서 5월 31일까지.


손경진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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