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37) 연출의 힘] 뮤지컬 객석에서 연출=전시기획자의 능력을 생각하다

다아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기자 2017.08.21 14:48:05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연일 화제인 뮤지컬 ‘시라노(Cyrano)’를 보기 위해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뮤지컬 시라노는 실존 인물이었던 시라노 드 베르즈라크(Cyrano de Bergerac)를 모델로 한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의 1897년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초연 당시에 큰 인기를 누린 이 작품은 제라르 드빠르디유(Gerard Depardieu)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익숙하다. 시인이자 음악가이며, 명망 높은 검객이자 군인인 시라노는 유달리 큰 코 때문에 사랑하는 록산느(Roxane)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그녀가 사랑에 빠진 크리스티앙(Christian)과 맺어질 수 있게 돕는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평생 그 비밀을 지키며 그녀에 대한 사랑을 지킨다. 호방하고 의협심 강한 영웅이지만 애절한 짝사랑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낭만적인 순애보와 기사도뿐 아니라 사회 풍자,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배우들의 열연에도 아쉬움이 남은 까닭은

뮤지컬이 끝난 후, 배우들의 열연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는데, 인물들의 캐릭터, 내용 전개, 장면 재현의 일부에서 공감이 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오늘날의 가치관이나 사회 상황과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고, 원작에 충실하다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애초에 모두의 입맛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객들을 위한 공연인 만큼 변화된 시대와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기에 연출과 기획은 그만큼 중요하다. 

‘연출가는 정말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곧 전시기획자(큐레이터)가 떠올랐다(연출가와 전시기획자가 같은 역할을 하고, 같은 영향력을 갖는다고 단순화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미술도 이러한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이 늘 요즘 미술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미술과 오늘날의 미술이 함께 놓이는 전시는 매우 많다. 모든 예술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를 반영한다. 따라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이라는 설명만으로 공감대를 끌어내기는 힘들다. 그렇게 생각하면 특정한 지역과 민족성, 계층 등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 관객이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요즘 만들어진 미술(예술)도 이해하기 어려운 마당에 시대를 초월하고 지역을 뛰어넘어야 한다니 말이다. 

제럴딘 하비에르(Geraldine Javier), ‘시간을 엮는 자들(Weavers of Time)’(2013), 캔버스에 유화, 레진, 나무와 태팅 레이스(tatting laces), 190.5 x 228cm(회화), 122 x 183 x 122cm(조각). 사진 제공=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이런 이유로 전시기획자는 중요하다. 똑같은 작품이라도 어디에, 어떻게 전시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과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같은 희곡이라 해도 누구에 의해 연출되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완성되고, 같은 원작에서 시작했어도 감독이 누군가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전시를 보는 대다수의 관객들은 작품과 미술가에게만 주목하고 전시기획자에게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공연 연출가에 관심을 갖고, 영화감독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특징들에 주목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작품이 완성되어 있는데 그냥 걸거나 가져다 놓기만 하는 것 아니야?’와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러나 – 오늘날에는 특히 - 전시 전체도 하나의 작품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소속된 기관이나 전시의 성격에 따라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큐레이터는 전시의 주요 개념과 메시지, 이야기와 형식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실현하는 총책임자이다. ‘어떤 미술가의 어떤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지’를 최종 결정하는 사람인 것이다. 작품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고 바라봐야 하는지에서부터 물리적인 환경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가는 모두 큐레이터의 손에 달려 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작가를 비롯해 전시 스태프들과 균형을 맞춰 협업을 이끌어내는 것도 큐레이터의 역할이다. 우리가 별 생각하지 않고 넘기는 조명의 각도와 강도, 전시장 벽의 색, 작품 사이의 간격도 많은 고민 끝에 나온 것이다. 

옛날부터 전시 기획에 대한 고민,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왔다. 시대마다 선호하는 전시 형식이 생기기도 했다. 18세기-19세기 살롱전의 전경을 그린 회화나 판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작품을 층층이 쌓아올리는 방식이 초기의 전시법이다. 처음에는 주제나 형태에 근거해 작품을 분류하다가 점차 유파 혹은 역사적, 지리학적 분류에 근거하여 전시하게 되었다. 예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했던 모더니즘 시대에는 명도가 낮은 흰색 벽, 성인의 일반적인 시야를 맞춘 높이, 작품 간 간격 등을 철저히 지켜 관객이 독립된 작품 하나하나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초대 관장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가 기획한 전시 전경 사진을 찾아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에도 가장 익숙한 형식이다. 

“이 전시의 기획 의도는?”을 생각해보는 것도 관람의 한 방법  

오늘날에는 모더니즘 시기까지 익숙하게 봐왔던 미술의 틀을 벗어난 작품들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더욱 전시기획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검증받은 규칙만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매 상황에 맞게 작가와 작품, 공간, 관객과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미술에서는 볼 수 없던 재료로 만들어진 형식을 넘나드는 설치 미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는 과정 미술, 관객이 직접 만지고 조작하고 참여하는 쌍방향적인 작업들은 주변 환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뿐더러, 주어진 조건에 따라 작품의 외관이나 변화의 폭이 달라진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에는 작가와 큐레이터가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협업한다. 작가는 완성된 작품을 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큐레이터와 상의하면서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 

리암 길릭(Liam Gillick), ‘모든 관계가 균형을 이루면 건물은 사라질 것이다(IF ALL RELATIONSHIPS WERE TO REACH EQUILIBRIUM THEN THIS BUILDING WOULD DISSOLVE)’(2016), 화이트 네온, 메탈 조각. 사진 제공=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언제든 마음에 드는 전시회를 만났을 때에는 한 번 기획자의 이름을 찾아보자(전시회 카탈로그의 뒷면이나 미술관의 홈페이지 혹은 관련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니면 ‘이 작가는 왜 이런 작품을 했을까?’, ‘이 작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왜 이런 전시를 기획했을까?’, ‘이 전시가 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면서 전시를 감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조금은 색다르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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