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전시] '죽을 길'을 질주하는 도시화-쓰레기에 레드카드를 들다

‘쓰레기 x 사용설명서’전과 ‘김한울: 일구어진 땅’전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7.08.25 09:15:43

(CNB저널 = 김금영 기자) 9월 개봉되는 영화 중 ‘킹스맨: 골든 서클’이 있다. 전편 ‘시크릿 에이전트’는 2015년 개봉해 국내에서 613만의 관객 수를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엔 통쾌한 액션도 있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문제도 등장했다. 영화 속 발렌타인(사무엘 잭슨 분)은 “인간이야말로 지구에 백해무익한 존재”라며 지구를 위해 인간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자신에게 선택받은 인간들만 살리려는 독재적인 프로젝트로 정의의 심판을 받았지만, 이런 고민은 꾸준히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제기돼 왔다. 1999년 개봉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스미스 요원이 “인간은 지구의 바이러스”라며 “행성 위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주변 환경과 자연적 평형을 이루지만, 인간들은 모든 자연 자원들을 소비하면서 또 다른 지역으로 퍼진다”고 말했다.


급격한 도시화는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지만, 그에 따른 문제들이 발생했다. 산업 폐기물에 따른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경고를 고하며, ‘정말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자는 전시들이 눈길을 끈다.


쓰레기의 유쾌한 활용
‘쓰레기 x 사용설명서’전


폐지 손수레. 오복식재활용수집소. 2017.

환경오염의 주범인 쓰레기를 유쾌하게 활용하는 전시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프랑스 국립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관장 장 프랑수아 슈네)과 ‘쓰레기’를 공동 주제로 특별전 ‘쓰레기 x 사용설명서’를 10월 31일까지 기획전시실 Ⅰ·Ⅱ에서 연다.


전시는 크게 쓰레기를 활용하는 법, 그리고 쓰레기로 취급받을 뻔한 유물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쓰레기를 단지 처리해야 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활용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측은 “쓰레기 분석을 통해 생활사를 복원하는 쓰레기 고고학은 오늘날 어엿한 학문의 한 분야”라며 “생활문화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쓰레기에 대한 탐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접근”이라고 밝혔다. 쉽게 얻고 버리는 현대 소비 풍조 속 쓰레기 문제를 통해 자신의 소비문화를 살펴보는 것이 취지다. 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 이웃이 실천하는 대안을 공유함으로써 관람객 스스로 해법을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의 업사이클 등기구. 람펠디자인, 업라이트.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된다. 먼저 1부는 ‘쓰레기를 만들다’이다. 1인이 하루와 1주일, 4인 가구가 1주일 동안 얼마나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는지 보여주는 영상물을 전시한다. ‘얼마나 버리는지 스스로 알아야’ 환경오염의 심각도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 또한 1회용 쓰레기 중 대표적으로 꼽히는 컵라면 용기와 나무 도시락의 초기 제품도 전시한다.


이어지는 2부는 ‘쓰레기를 처리하다’이다. 쓰레기가 생성되는 과정을 살펴봤으면, 이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방안을 함께 생각해본다. 넝마 바구니, 폐지 손수레 등 폐자원 수집 도구가 전시된다. 또한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가 2009년 발굴한 ‘서울 행당동 출토 생활쓰레기 유물’ 등도 전시돼 눈길을 끈다.


마지막으로 3부는 ‘쓰레기를 활용하다’로 이뤄진다. 역사적으로 쓰레기로 오인 받을 뻔한 유물들을 소개한다. 쓰레기라고 쉽게 판단한 물품들의 가치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자리다. 지승병, 피피선 바구니, 재활용 등잔, 철모 똥바가지 등 재활용사(史) 관련 유물 및 사진 자료를 전시한다. 그리고 우리 이웃이 보여주는 대안을 자료, 인터뷰 영상을 통해 소개하며 더욱 실질적으로 쓰레기 활용 방안이 삶에 다가갈 수 있도록 살펴본다. 여기에 쓰레기로 오인돼 잃어버릴 뻔했던 하피첩, 영조대왕 태실 석난간 조배의궤, 미인도 등의 문화재도 함께 전시한다.


하피첩(霞帔帖), 국립민속박물관, 보물 제1683-2호, 1810년.

여기에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개인과 단체, 기업의 대안도 소개한다. 1950년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정크아트(junk art)는 특히 현재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산업폐기물을 예술품의 소재로 활용하는 정크아트를 전문으로 하는 젊은 작가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꼭 작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쓰레기를 쉽게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알려주는 목적을 지녔다.


금자동이는 장난감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마을기업 리폼맘은 버려진 청바지로 가방을 만들어 다시금 실질적으로 쓸 수 있도록 돕는다. 열린옷장은 기증받은 양복을 면접을 준비하는 구직 청년에게 값싸게 대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재주도좋아는 제주 바다의 쓰레기를 수집해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정크아트를 보여주고, 아름다운 가게는 다양한 물건을 기증, 판매하고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며 쓰레기가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 폐품을 활용해 새로운 물건으로 만드는 리폼의 달인들, 일회용품이 만연한 사회에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사람들, 추억과 의미를 물건에 담아 간직하는 사람들 등 버림받은 물건에서 새롭게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정화, '알케미(Alchemy)'.

여기에 정크아트로 재탄생한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해 의미를 더한다. 박물관 야외와 실내에 최정화 설치미술가의 ‘만인보’, ‘브리딩 플라워(Breathing Flower)’, ‘알케미(Alchemy)’ 작품이 설치됐다. 그리고 버려진 물건을 예술품으로 탄생시킨 김종인 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의 ‘마니미니재미형(形)’도 전시된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진 학생 작품도 함께한다. 에코퍼센트(E%)는 자연 분해가 어려운 스티로폼, 알루미늄캔, 유리 등 합성소재를 활용한 ‘신(新) 십장생’ 작품을 선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 측은 “인류의 공통 과제인 쓰레기는 개인과 공동체, 미래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라며 “이번 전시가 우리 생활을 돌아보고, 스스로 쓰레기를 활용하는 등 작게나마 시작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람이 없는 공간을 꾸리는 동물들
‘김한울: 일구어진 땅’전


김한울, '모퉁이에서'. 캔버스에 흙, 아크릴 채색, 60.6 x 72.7cm. 2017.

8월 24일까지 대안공간 눈에서 열린 ‘김한울: 일구어진 땅’전엔 특이한 점이 있다. 화면에 단 한 명의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텅 빈 집을 채운 건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다. 그리고 또 존재하는 이들이 있다. 너구리, 새, 미어캣 등 동물들이 빈집을 둘러싸고 있다. 또 이 동물들은 매우 바빠 보인다.


‘쓰레기 x 사용설명서’전이 쓰레기를 활용하는 법을 제시한다면, 김한울 작가는 영화 ‘매트릭스’ ‘킹스맨’에서 제기된 주장처럼 사람이 없는 풍경을 보여준다. 이것은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자신이 오래 살았던 동네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점점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풍경에는 대신 쓰레기가 가득했다.


김한울, '바람의 노래'.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20 x 20cm. 2017.

그런데 처음에 폐허였던 공간은 조금씩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되기 시작했다. 쓰레기가 무성했던 자리에서 강한 생명력을 지닌 풀들이 쓰레기를 비집고 솟아났다. 또 자연스럽게 길고양이, 새 등 동물들이 서성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눈에는 이 동물들이 마치 집을 지키는 작은 신처럼 느껴졌다.


CNB저널 3회 커버공모 선정 작가인 김한울 작가는 이 이야기들을 화면에 담았다. 처음에는 집을 위주로 그림을 그렸다. 폐허가 된 공간에 옛 집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다시금 돌아와 돌 등 물건을 주워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작가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있을 때는 모른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이를 중심으로 그림을 그렸고, 조금씩 이곳을 서성이던 동물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김한울, '일구어진 땅Ⅲ'.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80.3 x 116.8cm. 2017.

이번 전시에서는 이야기가 더욱 심화됐다. 집을 배회하던 동물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집, 정확히는 그 집이 자리한 땅을 스스로 일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일군 풍경은 어떨까? 매우 평화롭고 고요하다. 집을 지키는 작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된 동물들은 탈, 모자를 쓰고 돌아다닌다. 새는 꽃을 물고 오고, 너구리들은 돌을 나른다. 폐허가 된 곳에 또 콘크리트를 붓는 게 아니라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재료를 가져가 집을 튼튼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곰돌이 인형도 이들에게는 친구가 된다. 돌과 나뭇가지와 더불어 인형도 나르면서 집을 지키는 자리에 함께 초대한다. 인간이 떠나버린 풍경에 오히려 자연과의 조화가 깃든다.


김한울, '구조물이 있는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53 x 65.1cm. 2017.

이는 작가가 처음 그림을 그릴 때부터 던져 온 ‘정말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직결된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사람들은 마구 땅을 파헤쳤다. 하지만 그 가운데 환경은 훼손됐고, 더 높고 비싼 땅과 집을 사기 위해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정말 당신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그 소중한 것을 계속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금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이 떠나고 나서도 묵묵하게 땅을 일구는 동물들 앞에서 고개가 숙여지는 이유다.


김한울, '좋은 꿈 꿔'.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60.6 x 72.7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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