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39) 미술과 음식] 숭고한 전시장에 음식냄새 풍기는 현대미술가들

다아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기자 2017.09.19 10:01:03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바쁜 하루를 보내다보면 삼시세끼를 제대로 챙겨먹는 것이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잠을 조금 더 자기 위해, 출근 준비를 하다가, 입맛이 없어서와 같은 이유로 아침을 거른다.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 보면 점심시간을 놓치거나 간단한 요기로 때울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저녁식사는 필요 이상으로 과식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매일매일 건강하게 잘 챙겨먹는 일은 참 어렵다. 이런 현실과 달리 텔레비전에서는 매일 유명한, 때로는 숨겨진 맛집을 소개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맛집’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엄청난 정보들이 검색된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부터 토속적인 향토 음식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곳곳에 음식점이 참 많다. 음식 관련 프로그램들도 인기다. 특히 tvN의 ‘삼시세끼’와 ‘집밥 백선생’은 시즌제로 방송되며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요리 관련 프로그램들은 그 자체로 볼거리와 정보를 제공한다. 

음식(식사)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매일매일 쏟아진다. 많은 기사들이 건강을 위해 하루에 세 끼를 잘 챙겨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또 다른 기사들은 하루에 두 끼, 때로는 한 끼만 먹는 것이 더 좋다고 주장한다. 특정한 음식이 건강에 좋거나 나쁘다는 식의 기사도 많다. 다른 한편에서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재료로 더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 특정한 요리법이나 음식이 유행하기도 한다. 물론 모두의 건강 상태와 체질,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정답에 획일적으로 맞출 필요는 없다. 그런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으니 음식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 요건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음식은 시각, 후각, 미각, 때로는 청각까지도 만족시키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그 자체로 취미와 여가가 될 수 있다.

‘고상한’ 서양 전통은 음식과 먹는 장면을 무시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음식이 미술에서는 어떻게 다루어졌을까? 사실 서양의 전통 미술에서 음식은 인기 있는 소재가 아니었다. 인간의 생존과 긴밀한 음식은 동물적이고 육체적인 영역과 연결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일상에서 늘 반복되는 음식을 먹는 행위는 예술의 주제가 되기에 평범하고 사적이라 생각되었다. 워낙 인물화에 비해 정물화가 비주류이기도 했지만, 만들어진 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변질되고 지저분해지는 음식의 성격도 좋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미각과 음식 먹기가 감각, 성적 욕망을 의미한다는 생각도 영향을 끼쳤다. 여하튼 이 모두는 이상적 가치, 정신과 영혼을 가진 고귀한 인간상을 지향했던 전통적인 미술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실제로 음식을 먹는 장면을 그린 회화는 드물며, 그려졌다 해도 어린아이거나 고상하고 우아해 보이지 않는 인물일 때가 많았다. 바니타스(vanitas) 회화에서는 상해가는 음식물이 해골, 꺼진 촛불과 함께 놓임으로써 유한한 생의 허무함, 죽음을 상징하기도 했다. 

전시 ‘미각의 미감’ 전시장 모습.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정물화는 아니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1495~1497년)에는 식탁 위의 음식과 그릇이 매우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그가 요리사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데이브 드윅(Dave DeWitt)의 책『다빈치의 부엌: 이탈리아 요리, 그 비밀의 레시피(Da Vinci’s Kitchen: A Secret History of Italian Cuisine)』(2012)에서는 음식에 많은 관심을 쏟았던 다 빈치의 삶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모더니즘 회화에서는 과거에 비해 정물화가 꽤 많이 그려졌으나 형식 실험에 집중했던 시대인 만큼 음식과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가 부각되진 않았다.   

그렇다면 요즘 미술은 어떨까? 오늘날의 미술가들에게 음식은 시대와 문화, 민족, 한 가족과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통로이다. 때로는 사회의 편견을 비판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미술관을 식당으로 바꿔버리는 작가 티라바니자

음식을 이용한 작품으로 가장 유명한 작가인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는 ‘무제-공짜(Untitled-Free)’(1992)에서 관람객들에게 태국식 팟타이와 카레 같은 음식을 나눠주었다. 작가는 음식을 나눔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관객과 소통하고, 관객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전시에 참여했다. 음식을 나누는 행위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또한 미술관을 식당으로 바꿔버리는 이 작업은 미술관이 가진 권력, 깨끗하고 순수한 영역인 화이트 큐브(white cube)로 상징되었던 전시장의 규범을 해체한다. 

김태범, ‘도시 피크닉’(2016), 전시 ‘미각의 미감’ 설치 모습.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전시가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진행되었다. 전시 ‘미각의 미감’(2016.12.5.~2017.3.19)에서는 미술가와 디자이너, 건축가, 요리사 등이 참여해 도시 생동(Food×Urban Mobility), 음식과 공동체(Food×Community), 음식을 통한 공유와 나눔(Food×Sharing Culture)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선보였다. 이 전시에서 관객들은 식재료에서부터 음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상의 소통과 관계맺음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음식과 음식을 만드는 행위는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만큼 성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들도 많다. 그 중 ‘달걀프라이를 붙인 자화상(Self Portrait with Fried Eggs)’(1996)으로 유명한 사라 루커스(Sarah Lucas)는 음식을 이용해 성 정체성에 대한 고정 관념을 우스꽝스럽게 드러낸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강간(The Rape)’(1934)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두 개의 달걀 프라이와 한 개의 케밥(Two Fried Eggs and A Kebob)’(2002)에서는 식탁 위의 음식으로 여성의 실루엣을 만들어냄으로써 음식처럼 소비되는 존재로 여겨졌던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풍자했다. 

성의 상품화를 담아내는 멜 라모스(Mel Ramos)의 작품들에 음식과 여성-핀업 걸(Pin up girl)의 이미지가 같이 등장하는 것처럼 일상에서 여성은 음식에 많이 비유되어 왔다. 한편 제닌 안토니(Janine Antoni)는 ‘갉아먹다(Gnaw)’(1992)에서 예술가의 이로 조각된 거대한 초콜릿을 선보였다. 작가는 거대한 입방체를 반복적으로 이로 물어뜯는 퍼포먼스를 진행함으로써 추상 미술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미술의 경직성에 질문을 던졌다.    

늘 우리 곁에 있는 일상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음식들, 그것은 그저 살아가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과 사회를 담아낸다. 그리고 내가 먹는 음식은 나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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