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전시] 젊은 작가 4인 “자, 전시장에서 빙고게임 시작~”

‘왜?’ 질문 던진 김현태·박종찬·엄지은·차슬아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7.12.07 15:01:10

(왼쪽부터) 박종찬, 차슬아, 엄지은, 김현태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빙고 게임은 상대방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 타인이 상대방의 판에 적힌 단어나 숫자를 호명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판을 채워나간다. 단어가 모두 호명되면 ‘빙고’를 외치고 게임이 끝난다. 그런데 여기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빙고 게임이 있다. 그것도 전시장에서. 아트 스페이스 풀이 풀랩(POOLAP) 기획전 ‘빙고’를 12월 30일까지 연다.


풀랩은 지난해부터 진행된 아트 스페이스 풀의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작가 4명(김현태, 박종찬, 엄지은, 차슬아)을 선정했다. 풀랩은 작가 선정 이후 약 6개월 동안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들과 함께 세미나 및 워크샵을 진행하는 게 특징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선정 작가 4명은 선배, 동료 작가들의 작업, 그리고 자신들의 작업에 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갈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연말 그 결과가 이번 ‘빙고’전에 마련됐다.


김현태, '우리집 달력'. 종이에 수성연필, 연필, 색콩테, 금분, 각 70 x 100cm(12장). 2016~2017.(사진=아트 스페이스 풀)

그간 어떤 이야기들이 이뤄졌기에 ‘빙고’가 전시명이 됐을까? 전시를 기획한 김미정 큐레이터는 “지난해 ‘공감오류’전에 이어 올해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작가들과 ‘빙고’전을 마련했다”며 “이번 전시는 한 주제 아래 작가들이 모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야기가 완전히 분산되지도 않는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빙고 게임을 할 때는 여러 단어가 필요하다. 작가들의 작업에는 각각의 키워드가 있었다. 또 서로의 작업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통분모를 발견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 과정이 마치 서로의 키워드를 읽는 빙고처럼 느껴졌다”며 “특히 작가들은 ‘무엇이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하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특징이 있었다. 사용하는 매체도,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도 조금씩 다르지만 조금씩 발견되는 공통분모를 통해 빙고를 맞춰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태, '훌륭하게 자라다오'. 종이 위에 수성연필, 연필, 색콘테, 97 x 145.5cm. 2017.(사진=아트 스페이스 풀)

김현태 작가는 기성세대와 현 시대 젊은이 사이 소통 오류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그 근원을 달력 이미지로 따라간다. 경상남도 창녕군 출신인 작가는 어머니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빨갱이’라 말했고 작가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환경이 어머니와 나 사이를 이렇게 작동하게 했을까’ 고민했고, 집안을 둘러보다가 부엌에 달린 달력을 발견했다. 친척이 보내준 달력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제작한 것이었는데 달력에 담긴 이미지가 작가에게는 마치 종교화된 이미지처럼 보였단다. 작가는 “달력에는 특정 인물들이 마치 신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것들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인물의 이미지와는 다른 것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경험은 2014년 작업인 ‘경상도 빨갱이’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연작인 ‘우리집 달력’을 선보인다. 실제 달력 이미지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되, 작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달력이다. 본래의 달력에 신적인 이미지로 표현됐던 인물의 얼굴을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칠해놓는다거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종이 인형에게 입히는 옷 모양을 그려 놓는 등 조금씩 실제 달력과는 다른 모습들이 발견된다. 하지만 정치적 비판이 목적은 아니다. 작가는 “기성세대와 현 세대와의 공감 오류에는 자라온 환경이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랐고, 박사모의 달력이 집안에 걸려 있었다. 그 환경들을 되돌아보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과정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작가들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발견한 갈등 요소들


엄지은, '잠수병'.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17분 30초. 2017.(사진=아트 스페이스 풀)

엄지은 또한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 그리고 자신에게 이르는 3세대의 소통 오류와 단절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잠수병’ 작업으로 이어졌다. 작가는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 압력차로 느끼는 통증병이 잠수병이다. 내게는 이 압력차가 세대 간의 생각 차이로 느껴졌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갈등과 아픔이 통증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잠수병’에는 긴장이 고조됐다가 터지지는 않고 힘이 빠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보는 내내 긴장을 풀 수 없다. 마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갈등이 폭발하려다 풀지 않고 포기하고 돌아서게 되는 것처럼. 하지만 그 가운데 작가는 자신에게서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을 문득문득 발견하는 순간 또한 마주했다. 작가는 “이해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 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게서도 발견됐을 때 느끼는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하지만 비논리적인 부분이라 생각되는 부분들도 연결 지어 이해해보자는 생각으로 바라보니 색다르게 다가오는 일상의 풍경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종찬, '나의 중심, 나의 중심'. a5 사이즈 책자, 테이블, 의자, 가변크기. 2017.(사진=아트 스페이스 풀)

박종찬이 느낀 생각의 차이는 지역에서 비롯된다. 전라북도 군산에 거주하는 작가는 수도권에 대한 열망과 동시에 열패감도 느끼며 자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심경은 ‘나의 중심, 나의 중심’ 텍스트, 사진 작업으로 이어진다. 전시된 글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으면 수도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열망을 극복하려는 밝은 의도가 읽힌다. 하지만 그 똑같은 글들을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면 “다 문제다. 서울로 떠나자”라는 정반대의 코드가 읽힌다. 지방을 폄하하고 서울만을 선망하는 이들의 대화,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지방을 벗어나고 싶은 젊은이들의 대화가 수록된 책도 전시한다.


특히 이런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건 군산이 지닌 역사도 기인했다고 한다. 군산은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쌀 수탈의 주축 지역이었다. 그때는 일본의 억압을 받고, 일제강점기 이후엔 미군이 들어섰다. 현재는 미군이 큰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이제는 서울에 종속된 듯한, 항상 주축에 서지 못하고 어딘가에 종속돼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을 통해 중심의 서사에 갇혀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꼭 지역사회 문제뿐 아니라 중심에 대한 열망과 여기서 발생하는 갈등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이야기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차슬아, '바지선'. 포멕스, 모래, 스티로폼, 박스, 우레탄, 페인트, 스프레이, 비디오(249), 가변크기. 2017.(사진=아트 스페이스 풀)

마지막으로 차슬아는 물성 실험을 통해 조각 작품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깨려는 시도를 한다. 앞서 김현태, 엄지은, 박종찬의 작업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존재에 대해 알아보려는 시도를 한 가운데 차슬아 또한 어떤 고정된 생각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한 시도로 눈길을 끈다.


작가는 “모래는 가변적인 성격을 가진 대표적인 물질이다. 하지만 이 모래를 딱딱하게 만들어 조각으로 만들며 물성을 실험했다. 단단해지기도, 분리되기도, 혹은 전혀 다른 형태로 만들어지기도 한다”며 “또한 모래를 딱딱하게 만들기 위해 수차례 이뤄진 실패 과정도 영상으로 제작해 함께 전시한다”고 말했다.


김미정 큐레이터는 “빙고는 상대방과 함께 공감을 전제로 하는 게임이다. 어쩌면 작가 네 명이 자신의 판에 기재한 단어 중 영원히 호명되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고, 풀 빙고(FULL BINGO)를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이번 전시는 게임을 완료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둘러싼 이야기에 반응하고, 그 원인을 탐구하며 다시 발생한 의문을 관찰하며 자신만의 판을 채워가는 과정을 작가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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