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작가 ③ 정윤석] 인간 닮은꼴 만들기 중 최고 어렵다는 ‘눈썹’전

인간은 왜 자신과 닮은 존재를 갈구하나?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8.03.21 08:51:47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일민미술관에 세 작가가 모였다. 10년 이상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 온 30~40대 작가들을 조명하는 ‘이마 픽스’전에 김아영, 이문주, 정윤석 작가가 참여해 4월 29일까지 작품을 선보인다. 저마다의 개성과 가치관이 들어간 작업들을 펼쳐온 작가들을 한데 모은 주제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다소 포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 주제 아래 세 작가는 각자 ‘이주’, ‘도시계획’, ‘인간과 꼭 닮은 마네킹’에 주목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정윤석 작가의 개인전 ‘눈썹’에 설치된 마네킹의 얼굴 모형들.(사진=김금영 기자)

흘러가는 영상을 보다가 자못 놀란 장면이 있었다. 엉덩이가 클로즈업된 장면이었는데 이 엉덩이에 물이 흘러내리면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영상을 처음부터 보지 않은 사람은 깜짝 놀랄 만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영상을 주시했다면 이 엉덩이가 사람이 아닌 섹스돌의 엉덩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래도 놀랍다. 미세한 살 떨림이나 엉덩이의 색이 실제 사람과 아주 흡사하다.

 

영상작업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을 펼쳐 온 정윤석 작가가 10년 만에 두 번째 개인전 ‘눈썹’으로 돌아왔다. 앞서 작가는 1993년 7월부터 1년 2개월에 걸쳐 전남 영광군을 거점으로 벌어졌던 지존파 사건 같은 구체적인 사건, 또는 밴드 밤섬해적단처럼 개인의 삶을 통해 국가와 사회의 공공성,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레드콤플렉스 등 사회 정치적 문제의식을 이야기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정윤석 작가는 인간과 꼭 닮은 마네킹과 섹스돌이 만들어지는 과정 및 이 인형들을 만드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영상 작업을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번엔 그 사회 안에 들어가 살고 있는 사람, 그들의 욕망에 주목했다. 작가는 “10년 동안 남의 뒤를 쫓는 영상을 찍다보니 단 한 번도 내게 카메라를 돌린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했다”며 “나 또한 인간이기에 인간에 대한 고민은 나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히 작가가 이 시대 사람들에게 궁금했던 건 욕망이다. 그것도 자신과 꼭 닮은 존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

 

지난 1월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연구는 과거부터 꾸준히 이뤄졌지만 유독 인간과 닮은 소피아의 모습이 화제가 된 것. 표정이 어색하기는 했지만 살짝 미소를 짓고 인간과 대화하는 모습은 굉장히 놀라웠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신기해하기도 하면서, 인간과 꼭 닮은 로봇의 등장에 거부감, 공포감도 드러냈다. 갈구와 거부가 공존하는 아이러니.

 

마네킹과 섹스돌 공장에서 찍은 화면들. 이 작업들은 ‘왜 인간은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들고 싶어 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인간은 왜 인간과 비슷한 것을 만들고 싶어 할까?’ 궁금했다고 한다. 그는 “이 질문이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답을 무작정 찾겠다는 생각보다는 인간이 스스로의 삶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주목한 현장은 마네킹과 섹스돌을 만드는 공장,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작가가 공장을 방문했을 때 그곳 직원들은 주문받은 마네킹과 섹스돌을 만들고 있었다. 인간 형상을 띤 이 인형들은 정말 독특했다고 한다. 진짜 사람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비율과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수동성까지, 간극이 존재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인형들의 ‘눈썹’에 눈길이 갔다.

 

섹스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화면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인간과 닮았으면서도 이질감이 있는 인형들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공장 사람들이 신경 쓰는 작업이 바로 속눈썹을 붙이는 것이었다”며 “사람도 눈썹 모양에 따라 인상이 달라보이듯 어떻게 눈썹을 붙이느냐에 따라 인형에 생명력이 부여되는 느낌이었다. 중국에 있는 공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사람들은 가장 어려운 작업으로 눈썹 그리기를 꼽기도 했다”고 말했다.

 

화면에 나오는 인형 만드는 과정은 강도 높은 노동을 요한다. 사람들은 일찍 출근해 인형의 틀을 만들고 잘라내고, 다시 붙이면서 사람과 꼭 닮은 인형을 만들어 나간다. 사람과 비슷한 존재를 만드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작가는 “공장 사람들의 태도 또한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고 짚었다. 그는 “마네킹과 섹스돌의 완성도를 보면서 놀라는 가운데 이 인형들이 어떻게 쓰일지 목적을 생각하고는 이들의 작업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공장 사람들은 스스로의 작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더 정교하게 사람과 닮은 인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눈썹’ 영상 작업이 설치된 전시장 전경.(사진=김금영 기자)

이 자부심은 인간의 삶과의 연결고리에서 비롯된 것일까? 작가는 “이번에 인터뷰를 진행하고, 영상을 찍으면서 마네킹, 섹스돌을 단지 성적 대용품이 아니라 친구, 가족 대용으로 여기고 주문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며 “일본에서도 관련 리서치를 찾아봤는데 이들은 현 사회에서 인간이 가장 비정하고, 섹스돌이 인간보다 나으며, 그래서 위로를 받는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가장 인간다워야 할 인간이 인간미를 잃어가고 점차 삭막해져가는 사회에서 인간과 꼭 닮은, 자신에게 상처주지 않는 존재를 인간은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은 아닐지,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지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인간의 형태를 모사하는 작업을 쫓아갔다면, 이후 작업에서는 ‘눈썹’의 파트 2 버전으로 인간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게 작가의 계획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트 3에는 인간과 꼭 닮은 존재와 인간과의 교류를 담고 싶단다. 작가는 “인간이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에 대한 답은 아직 얻지 못했다. 동시대가 가진 기괴한 이미지를 통해 인간과 인간다움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윤석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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