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13) ‘캄브리아기 대폭발’ 유영진 작가] 대폭발하듯 생겨나고 어느새 화석 돼버리는 한국의 집들

다아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기자 2018.09.17 09:54:18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유영진은 오래된 주택들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 것에 주목하고, 그 부속물들을 촬영하거나 수집한 뒤 ‘캄브리아기 대폭발(Cambrian Explosion)’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캄브리아기는 폭발에 비견될 정도로 진화학적 변화와 분화(分化)가 일어난 때이다. 이 시기에 대해 다양한 질문과 의견, 연구 결과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전 시대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다양한 생물들이 급속도로 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주택이 시간의 흐름과 환경적 조건에 반응하면서 변해가는 모습, 그 속에서 유동적으로 생성된 부속물들은 분명 다양성의 증가로 보인다. 일정 부분에서는 진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이 살고 있는 도시도 상호관계 속에서 긴밀하게 작용하며 분화되는 생태계일 수 있다는 작가의 주장 역시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주택의 부속물들이야말로 생생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습일지 모른다.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수집된 부속물의 표본들 중 중 일부는 작가에 의해 한 번 더 분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이다. 인사미술공간의 지하 1층에 놓인 대형 설치물들은 현장의 모습에 작가적 상상력이 발휘된 결과이다. 2층에 전시된 작가의 드로잉과 그것이 집약된 ‘캄브리아기 대폭발 모음집’(2018) 역시 사실에 근거했지만 작가가 부속물을 마주했을 때의 인상과 기억, 나아가 사유의 확장까지 담아낸다. 

 

‘캄브리아기 대폭발’,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8, ⓒ유영진

현실과 작가의 내면이 만나는 짧지 않은 과정 속에서 유영진은 자신이 왜 일상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주택의 작은 부분에 주목하게 되었는지, 이런 작업을 통해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숙고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유영진의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주택의 작은 부분을 통해 개인 혹은 사회적 역사(시작과 진보, 변화, 심지어 쇠락)를 담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처럼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었던 캄브리아기도 종착지가 있었다. 결국 한 시기가 끝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생물체들은 화석이 되었다. 지나치게 거창한 해석이라 작가는 부담스러워할지 모르지만, 이럴 경우 존재에 대한 근원적 서사를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캄브리아기 대폭발’, 전시장 전경, 2018, ⓒ유영진
‘캄브리아기 대폭발(Cambrian Explosion)’, 전시장 전경, 2018, ⓒ유영진  

현실의 폭발적 변화와 작가의 의식이 만나는 순간


한편 ‘캄브리아기 대폭발’에서도 유영진이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실재와 기억, 장소 혹은 공간, 기억과 기억을 근간으로 창조된 작가만의 유일한 세계’라는 주제가 이어진다. 


작가는 ‘캄브리아기 대폭발’ 시리즈 외에 ‘Never Seen’, ‘Nowhere’, ‘The Weathering(풍화)’ 등의 시리즈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처음 마주했을 때 각각의 시리즈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것 같지만, 기저에 하나의 단단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어 서로가 서로에게 끝없이 반응하고 관계맺음을 하며 변화, 확장, 분화(의 가능성)를 보여준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의 다음 전시, 다음 작업이 어떻게 확장될지, 어떻게 분화될지 매우 기대된다. 

 

 

작가 유영진.

[작가와의 대화] “70년대 대폭발 이후 지금은 大변환기”

 

- 주거 밀집 지역의 건축과 그 부속물의 생성 또는 진화를 ‘캄브리아기 대폭발’에 비유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작가가 채집한 주택 부속물들은 시각적으로도 고대 생물을 닮았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 속에서 캄브리아기 대폭발에 비유할만한 시기는 꽤 많았던 것 같다. 굳이 작가가 활동하는 지금 이 시대와 연결시킨 이유가 있는가? 본인이 다루는 건축물들이 분화되기 이전, 즉 처음 만들어졌던 때도 큰 변화와 발전이 있었던 시기다. 


“내가 다루는 다세대 주택들은 대부분 1970~80년대에 지어진 것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때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은 그때 세워진 건축(건축으로 대표되는 변화의 결과)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의 최대치에 이른 시대이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변화의 시대다. 이 한계를 넘어서면 또 한 번의 엄청난 분화가 있을 것이다. 1970~80년대 당시 진행되었던 도시·주택 계획의 결과물들이 시간과 주변 상황 등에 반응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변종들을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다양성의 대폭발이라는 측면에서는 현재의 상황이 진정한 의미의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아닐까 싶다.” 

 

‘캄브리아기 대폭발’, 전시장 전경, 2018, ⓒ유영진

- 반드시 한정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말하는 주택의 부속물은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포함하는지 궁금하다. 부속물도 결국 주택의 일부다. 예를 들어 벽돌 하나하나가 모여 집이 된다. 관점에 따라 주택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나 생명체도 부속물일 수 있다.  


“PVC 파이프, 폴리우레탄 폼, 버드 스파이크처럼 처음 건물이 완성되었을 때는 없었는데 추가된 것들이다. 처음부터 존재했던 부속물도 있기 때문에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아직은 그 범위를 열어둔 상태다. 지금까지는 누가 봐도 부속물인 것, 추후에 생겼음이 분명한 것들 위주로 사진을 찍거나 수집해왔다. 또한 사람이나 생명체는 포함되지 않는다.”

 

- 지하 1층의 설치 작업들은 작가가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의 모습을 100% 그대로 재현한 것인가? 아니면 편집 혹은 변형된 것인가? 2층에 전시된 다양한 오브제들은 어떤 상태인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드로잉과 설치 작업에서 현장의 모습을 어느 정도 남겨야 하는지, 상상력을 어느 정도 발휘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었다. 이후에 작업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모호한 상태로 남겨두고 싶었다. 완벽한 재현도, 완벽한 상상의 창조물도 아닌 상태다. 커다란 기둥을 하나 세우고 부속물들이 마치 그 기둥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생명체가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2층의 오브제 중에는 일체의 변형 없이 건물에서 잘라온 그대로 전시된 것, 다시 말해 단어 그대로 수집품인 것도 있고, 내가 만든 것도 있다.”  


- 부속물을 잘라올 때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 자신의 소유물을 낯선 사람이 떼어가는 상황에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어디에서 수집한 것인지 다 기록했나?  


“수집품은 모두 허락을 받고 잘라온 것이다. 안 된다고 하는 분은 없었다. 대부분이 폴리우레탄 폼이다. 아직까지는 어디에서 수집한 것인지 기록하지 않았다. 그 부분은 고민 중이다. 내 작업의 바탕이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을 이용해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캄브리아기 대폭발’, 전시장 전경, 2018, ⓒ유영진

- 화석을 통해 우리는 지구의 길고 긴 역사를 알 수 있다. 그런데 화석은 결국 죽은 후의 흔적이다. 생생하게 움직이는 삶의 공간에서 미래의 화석을 선별해온다는 사실이 양가적이다. 또한 매우 인위적이고 문명적인 도시 공간에서 고대 자연계와 유사한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 역시 (흥미로운) 의미의 충돌을 일으킨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무언가라는 점에서 주택은 자연과는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인위적 결과물이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처음에는 비슷한 외관을 가졌던 주택들이 모두 다른 모습으로 분화되는 모습은 인위적이라 말하는 영역을 뛰어넘은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화일 수도 있고 변형일 수도 있다. 처음 이 작업을 시작할 때의 목표는 도감을 만드는 것이었다. 도감은 지금은 있지만 곧 사라질 수도 있는 것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작업이다. 지금이 적당한 때라 생각했다.” 

 

- 우리의 과거와 그에 반응한 현재의 결과물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인 만큼 이번 전시에서 발표된 작품들을 사회-정치적 키워드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도시 계획, 재개발, 경제 논리, 한국의 근현대사 등 다양한 이슈들이 떠오를 수 있다. 대형 빌딩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주거 공간의 작은 부분들에 집중했기 때문에 미시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생태 철학으로까지의 확장도 가능해 보인다. 이전에 현재를 살아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을 다룬다고 말한 적 있다. 


“거창하고 거시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뜻한 것은 아니다. 또한 (아직까지는) 사회-정치적 이슈들을 전면에 드러내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일례로 나의 작품에 등장하는 곳이 재개발 지역이라는 것도 최대한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예술가로서 현실 세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는 있다. 작업을 진행할수록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내가 촬영하거나 수집하는 부속물들이 미미하지만 꼭 필요한 것처럼 나의 작업도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도 없어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되길 바란다. 과학자가 작은 벌레 하나, 식물 하나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것이 한 순간 세상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은 열심히 자신의 연구에 매진한다. 그리고 그들의 연구가 쌓이면 세상에 유의미한 변화 혹은 발전 혹은 무언가가 일어난다. 나의 작업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 모든 작품은 작가의 의도대로 읽힐 수 없다. 본인이 작품에 담고자 하는 메시지와 180도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 


“누군가 나의 의도와 정반대되게 이해해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의 해석이다. 주변의 반응이나 해석과는 별개로 나는 나만의 확실한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작가와 관객의 해석 차이를 주제로 작업을 진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 작가마다 작업의 목표는 제각각이다. 그 중에는 사회적 역할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좋아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사회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경우가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작품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길 바라면서 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다. 둘은 분명 다르다. 본인은 어느 쪽에 속하는가? 


“나는 후자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에 유의미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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