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전시] 이건용과 나점수가 그은 ‘선’

더페이지 갤러리서 2인전 ‘미언대의(微言大意)’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8.09.28 17:02:00

이건용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이건용 작가와 나점수 작가가 만났다. 더페이지 갤러리가 이건용, 나점수 2인전 ‘미언대의(微言大意)’를 10월 14일까지 연다. 두 작가의 회화, 드로잉, 설치, 조각, 퍼포먼스 등 구작과 신작 시리즈를 포함한 작품 80여 점을 소개한다.

 

‘미언대의’는 작은 언어들이 모여 큰 뜻을 이룸을 뜻한다. 그리고 전시장에는 두 작가의 행적 하나하나가 작은 언어들처럼 점을 찍으며 결국엔 하나의 긴 선을 이루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건용 작가의 ‘신체드로잉’ 연작이 설치된 전시장. 작가는 캔버스를 등지고 선 채 팔을 뒤로 뻗어서 그림을 그렸다.(사진=김금영 기자)

이건용 작가의 선은 역동적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아방가르드 전위예술을 이끌어 온 그는 자연의 소재를 활용한 설치 작품부터 다양한 매개체로 표현한 행위적 퍼포먼스의 결과인 회화까지, 전위성과 독창성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작품들을 작업해 왔다.

 

그는 캔버스에 선 하나를 긋는 방법조차 평범하지 않았다. 1976년부터 시작된 ‘신체드로잉’ 연작은 캔버스를 등지고 선 채 팔을 뒤로 뻗어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취했다. 그렇다보니 작가 스스로도 예측할 수 없는 선이 그어졌다. 이 선엔 이건용 작가의 역동적인 몸의 궤적이 담겼다.

 

이건용 작가가 그린 선은 역동적이다. 캔버스 뒤에 선 채 앞으로 손을 뻗어 그은 선도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사람의 형상을 중심으로 마치 활화산이 분출하듯 에너지가 느껴지는 선이 화면에 가득하다. 또 다른 선도 눈길을 끈다. 캔버스를 등지고 그린 선이 있다면, 반대로 캔버스 뒤에 선 채 앞으로 손을 뻗어 그은 선도 있다.

 

이건용 작가는 “나는 신체에 대한 지독한 관심을 갖고 작업을 이어 왔다. 선을 긋는 것 또한 신체와 관련된 일이었다. 손의 힘과 기술이 모두 선에 담겨 평면에 드러났다”며 “평면에 점을 찍고 선을 긋는 모든 과정이 회화다. 선을 긋는 것은 미술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신체드로잉’ 연작이 작가의 전시 공간 초입부에 위치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건용 작가가 발표한 적 없었던 90년대 수채화 드로잉들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더페이지 갤러리 측은 “이건용 작가는 평범한 행위들을 예술적 세계로 옮겨와 실존성을 제시한다. 이때 작가는 자신과, 사물과, 행위와 함께 평등하게 존재한다”며 “작가의 몸은 바로 시간성을 포함한 하나의 교차적인 장소가 돼 행위와 반복되는 그리기를 통해서 그의 실존을 가능케 한다”고 밝혔다.

 

‘신체드로잉’ 연작을 비롯해 그간 이건용 작가가 발표한 적 없었던 90년대 수채화 드로잉들도 이번 전시에서 함께 볼 수 있다. ‘신체드로잉’이 작가의 강렬한 선을 보여준다면 이 드로잉들은 그 선을 이루기 위해 찍혔던 수많은 점들의 집합체와도 같은 느낌이다. 작가 자신의 모습이 드로잉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건용 작가의 수채화 드로잉 중 하나. 작가의 모습을 중심으로 선이 넓게 뻗어져 나가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사진=김금영 기자)

 

이건용의 ‘역동적인 선’과
나점수의 ‘올곧은 선’이 지닌 울림

 

나점수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이건용 작가의 선이 둥글게 휘는 등 역동적인 모습을 드러냈다면, 나점수 작가의 선은 잠잠한 가운데 올곧게 솟아 있다.

 

특히 나무를 중심으로 돌멩이, 흙, 지푸라기 등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들을 통해 보여주는 선이 인상적이다. 예컨대 나무 판재로 이뤄진 추상 조각들을 균형을 맞춰 쌓거나 겹쳐 기대놓은 식이다. 자연에 있는 물체들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온 느낌이다.

 

나점수 작가는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들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선을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나점수 작가는 “40대까지만 해도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50대 들어서니 이전의 것들을 내려놓게 되더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에 대한 관심보다는 살아 있는 상태 그 자체, 즉 ‘그저 있는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말했다.

 

즉, 인위적인 선을 만들기보다는 있는 그 자체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담은 선을 보여주는 데 더 주안점을 두는 것. 작가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시키고 ‘살아진 것’들 사이 포착된 선들을 보여준다.

 

올곧게 솟아 있는 선의 모습이 인상적인 나점수 작가의 작품.(사진=김금영 기자)

나점수 작가는 이건용 작가의 작품을 보고 느낀 점을 밝혔다. 그는 “이건용 작가의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선 하나를 긋기 위해 이건용 작가는 온 신체를 집중시켰고, 그 결과 화면에서 살아 있는 느낌이 뿜어져 나왔다. 정말 놀라웠다”며 “내 작업은 쓰러질 듯 바르게 서 있는 작품들을 통해 그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닌, 살아 있는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엔 거창한 의미부여보다는 보이는 대로 느끼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 담겼다. 그는 “같은 지푸라기라도 보고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른 경험에 달려 있다. 다만 상태로 보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의미는 생긴다”며 “편견 없이 본질을 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나점수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또한 나점수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의 면과 선의 정의에 대해서도 밝혔다. 작가는 “면이 지속성을 지니게 해주는 존재라면, 선은 자연의 수평선과도 같이 무한함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한다”며 면과 선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음을 밝혔다.

 

두 작가가 제시하는 비슷한 듯 다른 선은 각자의 울림을 내포한다. 더페이지 갤러리 측은 “이번 전시에서 각각의 작품들은 서로 시각적인 끌림에 의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연결된다”며 “이건용, 나점수 작가의 미세하고 섬세한 언어와 행위의 수행을 느끼며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나무 판재로 이뤄진 추상 조각들을 균형을 맞춰 쌓거나 겹쳐 기대놓는 식으로 설치된 나점수 작가의 작품.(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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