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오고 못 배길걸 ③] ‘예술’과 ‘가치소비’ 조화 이룬 현대백화점

200억 규모 전시 및 유명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업사이클링’ 제품 선보여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20.11.05 13:07:51

코로나19로 일상화된 언택트(untact, 비대면) 문화는 유통업계 전반 마케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집밖에 잘 나오지 않는 소비자를 겨냥한 온라인 마케팅이 강화된 것. 하지만 기존 좋은 터에 큰 상가 건물을 둔 대형 유통업체는, 이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장기적 관점에서 매장으로 소비자의 발걸음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적극적인 오프라인 마케팅 또한 절체절명의 과제가 됐다.

기존 ‘매장 = 상품을 파는 곳’ 공식에서 더 나아가 매장에 도서관을 지어 책을 볼 수 있게 하고,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거나, 반려견과 함께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등 매장을 색다른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켜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다각도로 펼쳐지고 있다. 그 움직임에 주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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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 구매는 백화점에서

 

현대백화점 판교점 1층 열린 광장에서 고객들이 전시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 사진 = 현대백화점

200억 규모의 예술 작품이 전시됐다. 김환기, 이우환 등 국내 거장 작가를 비롯해 데이비드 호크니, 요시모토 나라,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도 등장했다. 전문 갤러리, 미술관을 방불케 한 이곳은 현대백화점 현장이었다.

현대백화점이 10월 판교점 전체를 예술 작품으로 꾸미는 ‘판교 아트 뮤지엄’을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기존에도 현대백화점은 예술을 적극적으로 매장에 끌어들여온 바 있다. 무역센터점, 목동점, 미아점, 대구점, 충청점 등 8개 점포에 마련된 ‘갤러리 H’에서 매년 150회 정도의 크고 작은 전시를 열어 왔고, 지난해 10월엔 국내 현대미술작가 6인의 조각, 설치예술, 미디어아트 등 100여 점의 작품을 무역센터점 매장 곳곳에 채우는 ‘아트 바이 더 현대’ 프로젝트 첫선을 보였다.

 

‘판교 아트 뮤지엄’은 행사 기간 동안 1층 열린 광장과 10층 토파즈홀을 비롯한 각 층에 200억 규모의 예술 작품 180여 점을 전시, 판매를 진행했다. 사진 = 현대백화점

이 가운데 올해 ‘판교 아트 뮤지엄’이 화제가 된 건 그 규모 때문. 행사 기간 동안 1층 열린 광장과 10층 토파즈홀을 비롯한 각 층에 200억 규모의 예술 작품 180여 점을 전시, 판매를 진행했다. 조각상, 바이크 드로잉, 조형 작품 등 장르도 다양했다. 1층 열린 광장엔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비싼 낙찰가와 누적 관람객 100만 명의 기록을 세운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도 마련했다. 이밖에 데미안 허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매드 사키 등 아트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들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2층과 3층, 4층 곳곳에선 조각들이 설치돼 고객을 맞이했다. 10층 토파즈홀에 마련된 특별 전시장엔 김환기, 이우환, 천경자, 카우스 등 국내외 아티스트 작품 85여 점을 선보였고, 아트 작품과 조화를 이루는 빈티지 가구들도 조화시켰다. 이우환의 ‘이스트 윈즈’, 박수근의 ‘노상’ 등을 선보인 가운데 특히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 주목받았다.

 

현대백화점 내부에서 진행된 ‘판교 아트 뮤지엄’ 현장. 사진 = 현대백화점

일본의 설치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는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도 인기 작가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올해 3분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을 분석한 결과 이우환이 약 45억 3400만원으로 1위, 쿠사마 야요이가 낙찰총액 33억 9000여만 원으로 2위에 올랐다. 작품으로는 지난 7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 출품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27억 8000여만 원으로 1위에 올랐다.

이런 쿠사마 야요이의 ‘원화’ 작품이 백화점 매장에 등장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유통업계가 쿠사마 야요이의 판화 작품을 판적은 있지만, 원화를 판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 작품은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전시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백화점은 국내 유명 미술품 경매 회사의 자문을 받아 작품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해 현대백화점 측은 “백화점을 쇼핑 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며 “판매 가격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쿠사마 야요이 작품의 원화를 소장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10층 토파즈홀에 영국의 아티스트 줄리안 오피의 작품이 전시됐다. 사진 = 현대백화점

‘판교 아트 뮤지엄’은 미술계 인사를 비롯해 기존 백화점 VIP 고객 및 젊은 고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며 매장으로의 관심까지 이끌어내는 효과를 냈다. SNS에는 인증샷을 찍기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작품과 함께 찍은 사진이 각양각색으로 올라왔다. 작품과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면 추첨을 통해 선정한 50명에게 모바일 상품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전개해 관심을 독려했다.

그림에 관심이 있지만 갤러리, 미술관 방문을 다소 부담스러워했던 예비 컬렉터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30대 회사원 김모씨는 “그림 구매 및 감상에 관심이 있지만, 평소 잘 가지 않았던 갤러리에 가서 그림 가격과 작가 정보를 물어보기엔 분위기도 엄숙하고 다소 높은 장벽이 느껴졌다”며 “그런데 백화점은 평소 잘 방문하던 접근성이 높은 장소라 전시가 럭셔리 콘셉트이고 비싼 작품도 있었지만, 쇼핑을 하면서 중간 중간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하면 돼서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덜했다. 직접 작품을 보고 가격도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라 쇼핑도 할 겸 겸사겸사 방문했었다”고 말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올 어바웃 해피니스(All About Happiness)’ 작품이 전시된 모습. 사진 = 현대백화점 공식 블로그

체험 행사도 진행해 아이를 둔 고객 사이에서도 관심몰이를 했다. 가이드맵을 따라 각 층마다 마련된 전시장에서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색연필을 증정하는 행사로,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전시를 감상하도록 이끈 것. ‘판교 아트 뮤지엄’을 아이와 방문했다는 한 고객은 “생각보다 큰 규모로 전시가 마련돼 있었다. 코로나19로 올해 여러 전시가 많이 취소돼 아이와 갈 만한 곳이 없어 아쉬웠는데 백화점에서 아이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며 “그냥 작품 전시면 아이가 다소 지루해할 수 있는데 놀 수 있는 요소가 마련돼 있었고, 전시도 무료여서 부담 없었다. 갔다 온 뒤 주변 사람에게 추천했다”고 말했다.

“예쁘지만 착했으면 좋겠어”…가치소비 실현

 

현대백화점 신촌점 ‘피어’ 입구. 사진 = 김금영 기자

현대백화점의 예술 활용은 전시에서 그치지 않았다. 문화 예술의 1차적 단순 소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한 가치소비에 관심 있는 고객들의 발걸음도 매장으로 이끄는 ‘지.구.장(지구를 구하는 장터)’을 마련해 진행 중이다. 패션과 예술적 취향이 어우러진 공간을 지향하는 패션 편집숍 ‘피어(PEER)’에서 친환경을 테마로 한 기획전으로, 신촌점·중동점 피어 매장(10월 23일~11월 12일)을 시작으로 목동점(10월 24일~11월 1일), 판교점(11월 6~12일) 등에서 순차적으로 열린다.

이번 행사는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협회가 함께 기획했다. 특히 피어와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해 제작한 신규 컬렉션을 비롯해 24개 친환경 브랜드의 200여 종 ‘업사이클링’ 상품들을 선보인다. 업사이클링(up-cycling)은 기존에 버려지는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recycling)하는 차원을 넘어 디자인을 가미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즉 예술적인 감각을 입은 제품을 사는 동시에 환경 보호와 신진 아티스트 지원 활동에도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되는 것.

 

래퍼 레디가 제작에 참여한 ‘더 캠핑’ 캡슐 컬렉션. 사진 = 김금영 기자

‘지.구.장’의 포문을 연 현대백화점 신촌점 피어의 도입부는 마치 캠핑장처럼 꾸며져 시각적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행사 기간 동안 래퍼 레디가 제작에 참여한 ‘더 캠핑’ 캡슐 컬렉션을 내놓은 현장이다. 더 캠핑 캡슐 컬렉션은 총 17종의 상품으로 아노락·후디·플리스 등 패션 상품과 의자·침낭·랜턴 등 캠핑 용품으로 구성됐다.

전시장과도 같은 이 공간을 지나 더 들어가면 본격적인 ‘지.구.장’을 만날 수 있다. “예술과 애중의 간극을 줄이자”는 브랜드 철학을 내세우는 브랜드 얼킨도 참여해 버려질 예정의 습작을 주재료로 한 업사이클링 가방을 선보였다. 수익의 일부를 신진 아티스트들에게 로열티와 새 캔버스 등 미술재료를 제공하고, 전시를 열어 작가들의 작품 유통 및 판매를 지원하는 형태다.

 

현대백화점 신촌점 피어에서 열리고 있는 ‘지.구.장’ 현장. 사진 = 김금영 기자

“예쁘지만 착했으면 좋겠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패션 프랜드 ‘아이 워즈 플라스틱’은 환경 보호를 외치는 지속가능 패션 브랜드로, 플라스틱 리사이클 소재를 사용해 만든 패션 제품들을 선보인다. 본래는 쓰레기로 버려질 예정이었던 플라스틱과, 그 플라스틱을 활용해 만든 패션 소품들을 함께 전시해 가치소비에 대한 관심 독려 및 시각적 효과까지 노렸다.

이밖에 플라스틱 대신 친환경 소재로 제작한 상품을 선보이는 ‘지구샵’, 폐낙하산을 이용한 가방을 제작하는 ‘오버랩’, 페트병을 업사이클한 나일론백 ‘블루오브’, 비건뷰티 ‘디캔트’, 소방관들의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해 가방으로 만든 ‘119레오’ 등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참여 중이다.

 

“예쁘지만 착했으면 좋겠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패션 프랜드 ‘아이 워즈 플라스틱’의 공간. 사진 = 김금영 기자

매장을 방문한 한 고객은 “기왕 돈을 쓸 거면 가치 있는 일에 쓰자는 주의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먹어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아진 가운데 환경 보호에 관심이 생겼다”며 “‘지.구.장’은 제품의 디자인도 독특한데 환경 보호의 가치까지 실현할 수 있어 더 관심이 갔다. 직접 와보니 캠핑 콘셉트로 신선하게 꾸려져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가치소비 활용은 VIP제도로도 이어지고 있다. 친환경 가치 실현과 관련해 현대백화점은 VIP제도를 진행해 매장으로 고객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10월 말까지 플라스틱 용기 수거 캠페인 등 자사 친환경 활동에 참여한 고객에게 엔트리 VIP 등급인 ‘그린’ 혜택을 제공 중이다.

 

올해 UN ‘글로벌 친환경 가이드라인(GRP)’ 인증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은 현대백화점의 친환경 활동이 소개돼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그린 등급에 선정된 고객에겐 현대백화점카드로 정상 상품 구입 시 VIP 혜택 기간 동안 5% 할인이 제공되며, 자주 이용하는 점포로 등록한 1개 점포에 한해 하루 3시간의 무료 주차가 지원된다. 또 압구정본점 등 전국 15개 점포의 ‘카페H’를 방문하면 한 달에 4번 무료 커피가 제공되고, 문화 행사와 패션쇼 등 이벤트에도 초청된다.

생활 속 작은 실천으로 환경 보호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집약한 8대 친환경 활동(①집에서 안쓰는 플라스틱 용기 가져오기를 비롯해 ②코팅이 벗겨져 수명이 다한 프라이팬 가져오기 ③재판매가 가능한 의류·잡화 가져오기 ④사용하지 않는 휴대폰 가져오기 ⑤텀블러를 가져와 백화점 내 무료 음료 라운지(카페H) 이용하기 ⑥친환경 장바구니 사용하기 ⑦플라스틱이 필요 없는 모바일카드 발급해 사용하기 ⑧전자영수증만 발급받기) 가운데, 고객이 5개 이상 참여한 후 압구정본점 등 15개 각 점포 사은데스크에서 인증을 받으면 ‘그린’ 등급을 받는 형태다.

 

친환경 활동을 인증받기 위해 현대백화점 점포 사은 데스크를 찾은 사람들. 사진 = 현대백화점

혜택은 11월부터 2개월간 제공된다. 특히 이 제도는 구매 금액에 상관없이 친환경 활동을 인증하면 VIP 혜택을 제공해 눈길을 끌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점포 사은 데스크엔 올해 UN ‘글로벌 친환경 가이드라인(GRP)’ 인증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은 현대백화점의 친환경 활동이 소개돼 있었고, 친환경 활동을 인증받기 위해 찾아온 고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대백화점 측은 “친환경에 대한 고객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일상 속에서 참여가 가능한 활동만으로도 VIP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며 “내년에도 상·하반기 각 1회씩 친환경 VIP 제도를 운영할 예정이며, 차별화된 행사를 지속적으로 기획할 계획”이라며 “유통 기업의 특성을 살려 고객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친환경 캠페인이나 제도를 지속적으로 마련해 ‘환경 보호’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에 앞장서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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