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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싯길 (9) 보개산으로] 그는 쓸쓸히, 의병은 분연히 건넌 산과 계곡…
1459년 가을 25세 매월당은 철원을 떠나 보개산(寶蓋山)으로 향한다. 보개산은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서쪽은 연천, 동쪽은 포천에 속하지만, 매월당이 살던 시대에는 철원도호부에 속한 산이었다.철원에서 보개산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었다. 지금의 3번 국도와 대부분 겹치는 삼방로…
[매월당 싯길 (8) 금강산에서 철원으로] 그의 시 남은 보리나루는 지금 어디…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은 단발령에서 귀경 길에 오른다. 그것 또한 가까운 길은 아니다. 어느 길을 택하여 서울로 돌아갈까? 금강산으로 갈 때 택했던 포천 ~ 영평 ~ 김화 ~ 금성 ~ 단발령 길을 거꾸로 돌아갈까? 아니면 단발령 ~ 금성 ~ 평강/또는 김화 ~ 철원 ~ 연천 길을 택…
[매월당 싯길 (7) 금강산] 발 부르트도록 금강산 날아다닌 김시습과 생육신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의 금강산 길을 쓰려니 마음이 싸하다. 통일 후에 쓸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통일 이후에는 다시 답사길 겸해서 쓰기로 하고 일단은 옛 글과 옛 그림으로라도 그의 싯길을 이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일전에 겸재 그림 길을 쓰면서, 청와대 안에서 보아…
[매월당 싯길 (6) 금강산길, 김화] 그가 간 길은 분단되고, ‘꽃강’만 흐르…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은 날이 밝자 행장을 꾸려 다시 금강산 길에 오른다.영평현 관아는 지금의 포천 영중면 양문리에 있었다. 옛 양문역(梁文驛)이 있던 지역이다. 북관대로(北關大路: 경성과 함경도 경흥을 잇던 길)는 강원도 김화(金化)로 향한다. 지금의 43번 국도인데…
[매월당 싯길 (5) 금강산길, 영평] 없어진 영평 지나 무릉도원 향해 가다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포천에 날이 밝자 매월당은 금강산 길에 다시 오른다. 운수납자(雲水衲子: 수행승)의 유람 길이니 달리 바쁠 것도 없다. 길은 태조 이성계도 무수히 다녔을 북관대로(北關大路)다. 말이 대로이지 우마차 하나 제대로 가기 힘든 오솔길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매월당 싯길 (4) 금강산 길, 포천] 금강산 길목 ‘물 품은’ 포천의 물맛 술…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분포(盆浦)의 절(옥수동 미타사)을 떠난 매월당은 일단 한양으로 들어왔다. 먼 길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금강산 길이다. 조선인들에게 최고의 여행지는 단연 금강산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가 되면 선비라면 한 번은 다녀오고 싶어 했고 더욱이 화인(畵人)이나 시…
[매월당 싯길 (3)] 꽃피는 봄날의 한강을 읊은 김시습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은 두뭇개 승사(僧舍) 행사 후 잠시 편안한 시간을 가진 듯하다. 그는 어촌을 둘러보고 한강을 바라보며 시심(詩心)을 느낀다.태조가 천도한 한양은 본래 신라의 북한산주, 한산군(漢山郡)이라는 이름을 거쳐 고려 숙종 때 남경, 충렬왕 때 한양부(漢陽府…
[매월당 싯길 (2)] 동호대교 앞 분포에 선 25살 청년 김시습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임진나루를 건넌 매월당은 아마도 들러가라는 상인(上人: 노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나 보다. 이내 발길을 남쪽으로 잡아 한양으로 향한다. 길은 의주대로(義州大路)였을 것이다. 파주 지나 혜음령 넘고 벽제관, 구파발, 양철평 지나 한양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매월당 싯길 (1)] 개성에서 임진나루 건너 강원도로 첫걸음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그는 풍운아였다.조선초 1435년(세종 17년)에 성균관 옆 반궁리(泮宮里)에서 태어나 1493년(성종 24년) 59세의 나이로 만수산(萬壽山) 무량사(无量寺)에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그의 생(生)에 많은 날들은 길 위에 있었다…
[겸재 그림 길 (114) 겸재 묘역] 겸재 그림 길 마무리하며 묘소를 찾아 봄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의 손자 손암(巽庵) 정황(鄭榥)의 그림에 양주송추(楊州松楸)라는 그림이 있다. 양주는 경기도 양주이며, 송추(松楸)라는 말은 소나무와 가래나무라는 말이지만 예전에는 무덤에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심었기에 무덤을 이르는 말로 사용하였다. 그러니 양…
[겸재 그림 길 (113)] ‘인왕제색’ 그린 곳이 청와대 경내 아닌 이유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 그림 길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연재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겸재를 사랑하는 이들이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그림 두 점이 있다.하나는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로, 어디에서 그렸을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인암(舍人巖)으로, 어디에 있…
[겸재 그림 길 (112) 관악산] 멀리서 관악을 그린 겸재와 84세에 오른 허목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의 관악산 그림은 두 점이 전해지고 있다. 선문대 소장의 관악청람(冠岳淸嵐)과 일본 야마또문화관 소장의 관악석람(冠岳夕嵐) 도(圖)이다. 두 그림 모두 관악산에 가서 그린 그림은 아니고 덕양산(德陽山: 행주산성) 동쪽 기슭 또는 행주산성 앞 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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