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박상우] 스마트폰 액정에서 발견한 新 단색화

cnbnews 윤하나 2017.03.16 14:47:27

박상우, '선으로부터'. 2016. (사진제공=갤러리 룩스)


스마트폰 액정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검은 사각형아닐까요?”

 

지난 35일까지 갤러리 룩스에서 열린 사진전 뉴 모느크롬: 회화에서 사진으로에는 다양한 크기의 검은 사각형이 전시장 곳곳에 걸렸다. 사진이론가이자 전시기획자로 알려진 박상우가 이번 전시에 직접 작가로 나서며 위와 같이 말했다.

 

그의 검은 사각형에는 하얀 실선이 난무하거나, 크고 작은 균열들이 영롱한 빛을 반사하거나 또는 지문 같은 얼룩이 가득하다. 납작한 스마트폰 액정을 촬영한 사진을 통해 박상우는 가장 표면적이고 기계적인 모노크롬(Monochrome, 색면화·단색화)의 가치를 발견한다. 회화가 아닌 사진 매체로 사진만이 가능한 모노크롬을 실험하고, 이를 통해 전통 모노크롬과 단색화 비평을 시도한 그를 만났다.


작품 '디지털 검은 사각형' 옆에 선 박상우 사진이론가. (사진=윤하나 기자)


스마트폰 액정으로 발견한 '말레비치의 사각형'

스마트폰으로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작품 이미지를 보다가 무심코 액정을 껐는데, 거기에 또 다른 검은 사각형이 보이더군요.”

 

전시에 계속해 등장하는 검은 사각형은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작품명이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추상회화의 극한에 이른 모노크롬 회화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말레비치는 형태와 색상(단색)을 제거한 이 극단적인 회화를 통해 철학적 사유로 향하는 것이 초기 모노크롬 회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극적인 절제를 통해 초월적 세계로의 숭고한 경험으로 풀이되는 모노크롬 전통은 이후 한국의 단색화 계보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신적 가치에 치중해 소위 '엘리트 미술'이라 불리기도 하는 모노크롬 회화를 박상우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 액정화면에서 발견했다전시장의 가장 넓은 벽에는 저마다 크기가 다른 검은 사각형이 흰 바탕의 사진에 자리했다. 전시 포스터를 장식하기도 한 이 작품은 각각 다른 모델의 스마트폰 12종의 액정이 모은 사진이다.

 

요즘 우린 이것(스마트폰 액정)을 통해 세상과 소통해요. 세상을 향한 창문처럼요. 우리와 무척 가깝고 일상적인 동시에 다른 세상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죠. 다시 말해 요즘 시대에는 초월적인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 스마트폰의 검은 액정으로 대체된 셈이에요.”


박상우, '터치 1'. 2016. (사진제공=갤러리 룩스)


그 옆으로 검은색 동그라미와 사각형 형태의 작품 두 점이 전시됐다. 처음에는 이들 사진작품 전체가 검은 색면 도형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숨겨진 무언가를 볼 수 있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형 사진 속엔 수많은 500원짜리 동전이, 사각형 사진 속에는 5만 원권 지폐가 가득하다. 동그란 집중 조명 아래로 어슴푸레 돈의 형상이 보일 듯 말 듯 오묘하다. 빛이 비추는 곳에 가까이 다가가야 비로소 돈의 실체가 보였다. 그에 반해 빛이 들지 않은 구석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이 절묘한 노출에 대해 박 이론가는 외형적으로는 밋밋해 보이는 모노크롬이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각도에 따라 대상의 실체를 파악하거나,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다. 보자마자 바로 알게 되는 것보다, 의미를 파악하기까지 몇 번이고 들여다봐야 하는 것, 인식을 연장시키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박상우 이론가는 전시 서문을 통해 실재에서 멀어진 추상은 비현실의 세계에 머문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대상에 종속적인 사진에서 대상이 제거되고 표면만 남을 때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모노크롬으로 발견해낸다. 이것은 다시 말해 실재에 기반을 둔 추상 사진만이 담을 수 있는 세상의 경이일 것이다.

 

반짝이는 순금의 표면을 포착한 ‘모노골드’. 이 작업은 또 다른 모노크롬의 대가 이브 클라인의 동명의 작품에서 영감 받았다. (사진제공=갤러리 룩스)


모노크롬 - 단색화 - 뉴 모노크롬의 정반합

표면 통해 가장 깊이 있는 것 볼 수 있어

 

그의 작품에는 디지털 묘법’, ‘선으로부터’, ‘모노골드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떠올릴만한 제목들이 많다. 이 중 한국 단색화 계 대표작가 박서보의 묘법과 이우환의 선으로부터’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방식으로서의 정신적 수행을 표방해왔다. 반면 박 이론가는 이들 제목과 동명의 작업에서 제자가 오래 사용한 태블릿 PC의 거친 표면이나 깔끔한 액정에 남은 선명하고 긴 지문 자국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작품의 의도를 묻자 망설임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깊이보다 평면(표면)을 강조하는 이유는 단색화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며, “단색화는 깊이와 정신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반대로 평면과 물질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발터 벤야민의 광학적 무의식이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광학 기기(사진 장치)에 의해 무의식의 세계로 드러낼 수 있다고 한다. 다음 작품을 보면 표면과 무의식에 대한 그의 해석을 이해할 수 있다. 산산조각 난 액정 표면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은 평소 볼 수 없었던 균열 속의 무수히 많은 반짝임을 드러낸다(‘파열된 검은 사각형’). 사진에 담기기 전까지 볼 수 없던 영롱한 반짝임과 미세한 균열들처럼 이 납작한 액정은 우리를 계속해서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인식의 세계와 달리 현실에서 평면-물질은 깊이-정신과 대립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유연하게 다음으로 이어졌다.

 

가장 표면적인 것이 가장 깊이 있고, 가장 기계적인 것이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물질적인 것이 가장 정신적인 것일 수 있다.”


박상우, '파열된 검은 사각형'. (사진제공=갤러리 룩스)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다아트 TWITTER

다아트 추천 동영상

William Kentridge, 'What Will Come'.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