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전시] 앤디 워홀이 날아다니는 전구를 만든 사연

국립현대미술관,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또 다른 시작’전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8.06.04 16:51:24

 전시장 천장에 예술가 앤디 워홀, 공학자 빌리 클뤼버가 함께 작업한 '은빛 구름'이 설치됐다. '공중을 떠다니는 전구'라는 아이디어가 이 작품의 시발점이었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한껏 부풀어진 풍선이 전시장 천장에 두둥실 떠 있다.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낸 인물의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은 일순간 고개를 갸웃한다. 예술가 앤디 워홀, 그리고 벨 연구소 소속의 공학자 빌리 클뤼버. 서로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은 어떻게 이 작품에서 만났을까?

 

앤디 워홀은 작품 초기 구상단계에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전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막연한 상상일 뿐 실제 현실로 옮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한계를 과학기술로 극복하고자 빌리 클뤼버의 힘을 빌렸다. 빌리 클뤼버는 전구가 떠다니는 건 불가능하지만 당시 군용 샌드위치 포장용지로 사용했던 은색 스카치팩은 공기의 밀봉이 가능하고 가볍기 때문에 작품으로 활용 가능한 것을 발견하고, 앤디 워홀에게 스카치팩을 사용해 구름을 만들기를 제안했다.

 

그 결과 직사각형 모양으로 접은 스카치팩에 헬륨을 채워 넣은 ‘은빛 구름’이 만들어졌다. 즉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은 앤디 워홀, 그리고 이 상상력을 현실에 구현하는 과학기술은 빌리 클뤼버에서 비롯된 것.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자서전' 작품이 첫 번째 섹션 '협업의 시대'에 전시된 모습. 3개의 패널로 구성된 석판화로,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삶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제시하는 작품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앤디 워홀과 빌리 클뤼버뿐만이 아니다. 예술과 기술의 실험을 의미하는 ‘E.A.T.(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 협업체를 통해 수많은 예술가와 공학자의 만남이 이뤄졌다. E.A.T.는 예술가와 공학자 그리고 산업 사이 더 나은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 아래 1966년 예술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로버트 휘트먼, 공학자 빌리 클뤼버와 프레드 발트하우어를 주축으로 세워졌다.

 

전시를 기획한 박덕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은 융복합 콘텐츠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건 갑자기 오늘날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2차 세계대전 이후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속 1960년대 기득권층 문화에 반하는 문화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발달했고, 지금처럼 기계 문명에 대한 공포와 환상이 공존하는 시기를 맞았다”며 “이 가운데 다양한 장르간의 벽을 허물고 협업을 도모하면서 예술가와 공학자간의 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현상이 생겼다. E.A.T.가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6000명이 넘는 예술가와 공학자가 이 단체의 회원으로 가입하며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갈망했다. 앤디 워홀을 비롯해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포스트모던 무용의 대표적인 안무가 머스 커닝햄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이 이뤄낸 예술과 기술 간의 협업의 가치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개한다.

 

두 번째 섹션 'E.A.T.의 설립'이 열리는 전시장 전경. E.A.T. 단체의 본격적인 협업의 결과물들을 선보이는 공간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또 다른 시작’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9월 16일까지 열린다. E.A.T.의 주요 활동을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이자, 4차 산업혁명시대 융복합 예술의 가능성을 성찰하는 자리다. 예술과 과학기술의 만남을 주도한 33점의 작품과 단체의 활동 및 작업 등을 담은 아카이브 100여 점을 소개한다.

 

박 학예연구사는 “E.A.T.가 그간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서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예술가들은 열린 결말을 추구하고, 공학자들은 미리 결말을 예측해서 작업을 했다. 상반된 작업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상반된 두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났을 때 예측하지 못한 흥미로운 결과물이 탄생했다고.

 

그는 “예술이 기술을, 또는 기술이 예술을 단순히 이용하는 게 아니라 서로 간의 특징과 장점을 받아들여 같이 발전하고자 하는 태도를 취했다. 어느 분야를 상위, 또는 하위에 두지 않고 동등하게 보고 존중하는 태도가 흥미로운 작업물들을 탄생시킨 원동력”이라며 “과거의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우리에게도 많은 배울 거리를 제공한다. 또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게 한다”고 말했다.

 

‘열린 결말’ 추구하는 예술
‘미리 결말 예측’하는 과학기술이 만났을 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아이스 테이블’은 냉각장치를 갖춘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놓인 얼음이 전시장 공기에 녹고, 다시 동결되기를 반복하는 작품이다. 예술가 한스 하케가 E.A.T.를 통해 공학자를 소개받아 협업했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 ‘협업의 시대’에서는 E.A.T.에서 공동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졌던 1960년대를 돌아본다. 키네틱 아트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팅겔리의 대표작 ‘뉴욕 찬가’의 기록 영상을 여기서 볼 수 있다. 빌리 클뤼버와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버트 브리어가 협업한 작업이다.

 

다양한 폐품으로 만들어진 길이 7m, 높이 8m에 달하는 작품이 스스로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증기를 내뿜다 자멸하는 ‘뉴욕 찬가’는 발전과 자생을 거듭하는 현대문명에 관한 인식, 즉 기계가 어떻게 사용돼야 하는지에 대한 예술가와 과학자의 상이한 견해를 담았다. 앞서 언급된 앤디 워홀과 빌리 클뤼버의 ‘은빛 구름’도 이 섹션에서 볼 수 있다.

 

E.A.T. 단체의 본격적인 협업의 결과물들을 선보이는 두 번째 섹션 ‘E.A.T.의 설립’에서는 한스 하케의 ‘아이스 테이블’(1967)과 로버트 휘트먼 그리고 공학자 에릭 로슨과 래리 헤일로스가 함께 만든 ‘붉은 직선’(1967)이 눈길을 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아이스 테이블’은 냉각장치를 갖춘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놓인 얼음이 전시장 공기에 녹고, 다시 동결되기를 반복하는 작품이다. 한스 하케는 응축, 강수, 증발, 온도 변화에 따른 팽창과 수축 등 자연 에너지를 조각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해 기술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E.A.T.를 통해 공학자를 소개받았고 그 결과 빛, 온도, 습도 등 주변 환경에 반응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현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아이스 테이블’을 만들었다.

 

네 번째 섹션 '확장된 상호작용'에서는 E.A.T.의 활동이 예술과 과학기술의 협업을 넘어 사회 참여 프로젝트들로 확산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붉은 직선’은 레이저 기술과 예술이 만난 작품이다. 붉은 광선이 전시장 벽면을 반으로 가르듯 작선을 그리며 나아가다가 네 벽면을 모두 거치면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 다시 점이 되는 형태다. 1960년대 초 첨단기술로 여겨진 레이저 기술이 발명되면서 예술가들에게 어떤 영감을 줬는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1966년 10월 뉴욕의 69 기병대 무기고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작업 ‘아홉 번의 밤: 연극과 공학’이 중심을 이룬다. 수십 명의 예술가와 공학자가 대규모로 협업한 이 공연 프로젝트는 9일 동안 10개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이벤트였다.

 

박 학예연구사는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들과 기술들이 다채롭게 조화를 이루는 오늘날 다원예술의 모태가 된 퍼포먼스”라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공연 당시 기록된 10개의 퍼포먼스 공연과 현재 E.A.T.의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줄리 마틴이 공연에 참여했던 예술가와 공학자들을 1990년대에 다시 만나 인터뷰한 영상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섹션은 ‘확장된 상호작용’이다. E.A.T.의 활동이 예술과 과학기술의 협업을 넘어 사회 참여 프로젝트들로 확산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안나 룬드의 ‘Q&Q-2028’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참여형 프로젝트다. 2018년 한국의 관람객이 10년 후의 미래에 질문을 던지는 형태로 구성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이곳에서 주목받는 작품은 ‘떠다니는 것’(1970)이다. 2m 높이의 돔 모양 입체 조형물인데 스쳐지나가듯 보면 전시장 바닥에 설치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작품은 분당 60cm 이하의 느린 속도로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고 있다. 또 전시장 안을 돌아다니다 장애물에 부딪히면 스스로 방향을 바꿔 움직인다.

 

작품을 만든 로버트 브리어는 어떤 방해와 제약에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배열하는 조형물을 통해 오브제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전체적인 상황이나 환경으로 작품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를 지녔다. 또한 관람객들이 단순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길동무로서 작품에 관여하고 참여하는 과정을 이끌었다.

 

안나 룬드의 ‘Q&Q-2028’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참여형 프로젝트다. 스웨덴 출신 작가 안나 룬드는 E.A.T.가 1971년 실행했던 ‘텔렉스: Q&A’에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기획했다. 1971년 당시 E.A.T.는 스톨홀름, 뉴욕, 도쿄, 아마다바드 각 지역의 사람들이 10년 후인 1981년에 관해 질문하면 과학자, 예술가 등 전문가들과 일반인이 질문자에게 답변을 전송하는 프로젝트 ‘텔렉스: Q&A’를 선보였다.

 

이번엔 시간과 장소가 옮겨졌다. ‘Q&Q-2028’은 2018년의 한국의 관람객들이 10년 뒤 미래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형태다. 전시장에 놓인 설문지와 웹사이트를 통해 질문을 남길 수 있다. 예술과 과학기술의 결합이 논의되기 시작한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가늠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이밖에 E.A.T.의 창립 멤버인 로버트 휘트먼이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서울 – 뉴욕 아이들 지역 보고서’(2018)도 이 섹션에 전시된다. 서울과 뉴욕에 살고 있는 11~13세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각자가 살고 있는 도시의 풍경을 촬영하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미디어랩과 뉴욕의 ‘컬쳐허브’ 스튜디오에서 실시간 영상통화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퍼포먼스로 이뤄졌다.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줄리 마틴 E.A.T. 디렉터는 “예술가와 공학자간의 협업으로 새로운 시작과 역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가 뜻깊다”고 말했다. 박덕선 학예연구사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또 느낀 점이 있다. E.A.T.가 추구했던 가치의 중심에는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이 있었다. 1960년대 이후 사람들은 발달된 과학기술에 의존하기 시작했지만 이 가운데 첨단 과학기술에 인간적인 숨결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을 놓치지 않았다”며 “이번 전시는 그 노력을 돌아보며 미래의 우리는 기술과 더불어 어떻게 인간으로서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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